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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용 변호사 |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자마자 든 생각은 '전쟁이 벌어졌구나!'였다. 아무리 휴전상태라고는 하나 전쟁에 휘말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해 왔는데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교전에 관한 소식은 들리지 않고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유가 발표되면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함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계엄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므로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발령 요건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고, 특히나 계엄령이 군사독재의 방편으로 악용되었던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더욱 억제되어야만 한다. 전쟁이나 대재난이 아니라면 발령되어서는 안된다. 계엄 선포의 이유를 접하며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이다.
그 의아함을 넘어 공포심을 들게 하였던 것은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이었다. 이는 헌법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계엄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마련해 놓았던 입법부의 권한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만일 군사력이 동원되어 정치활동을 이유로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이로써 재적위원 과반수라는 계엄 해제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적법성을 다툴 여지도 없이 위헌적인 계엄상태가 유지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헌법을 통해 오랜기간 공고히 유지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체계가 자칫 한 순간의 군사력 사용으로 송두리째 무너질 수도 있는 취약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난 순간이다. 차후에 계엄 당시 국회의원 체포조가 운영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하기도 했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절대 묵과하기 어려운 일이다.
정말 다행히도, 계엄선포 단 2시간 만에 국회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계엄 해제가 결의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의 민주주의가 튼튼하게 자리잡혀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출근길을 답답하게 하는 교통체증이 계속되는 모습을 보며 이 평화로운 일상의 감사함을 되새기기도 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오래 전부터 모순이 있다고 느낀 민주주의의 딜레마 같은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바로 '야당은 나라가 잘못될수록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특정 정당을 지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어느 정당이든, 나라가 평화롭고 정치가 안정된다면 집권 여당이 다음 선거에서도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게 될테니 야당으로서는 그 반대의 결과를 바라게 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구조가 민주주의의 모순으로 다가온 것이다.
몇 차례 정권이 뒤바뀌는 과정에서 특히나 양당제가 공고화될수록, 당론이라는 명목의 획일적인 당파적 주장이 남발될수록 더욱 이와 같은 야당의 딜레마가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토론과 설득을 통해 국익에 부합하는 최선의 결정을 도출하기 위한 정치의 본질은 잊혀지고 정쟁과 혼란만이 원래 모습인 것처럼 당연시 될까봐 더욱 걱정되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바라보며 이런 모순점이 곪아 터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번 계엄 선포가 정당화 될 수는 없다. 계엄은 곧 독재로 이어질 수 있고 우리나라의 근간인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독재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위대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이번 사태가 더 성숙한 정치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신기용 법무법인 윈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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