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쁘리아 위히아 사원 |
이곳 당렉(Dangrek) 산맥의 산지 형세가 북쪽인 태국 국경 지대가 낮고 캄보디아 영토인 남쪽이 높은 지형의 모습이어서 국경선과 관련된 논란이 일어날 소지가 많았다.
하지만, 1904년 당시 캄보디아 보호국이었던 프랑스와 시암(현 태국) 간에 분수령을 중심으로 국경선을 확정하는 조약 체결 이후, 1907년 양국 공동 국경선확정위원회가 제작한 지도[2]를 근거로 쁘리아 비히아 사원은 1962년 6월 15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캄보디아의 영토에 속하는 것으로 판결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이 지역에 관한 귀속 여부에 관한 논란이 일어났고, 2008년에는 쁘리아 비히아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양국의 군사적 충돌까지 발생하였다.
아직도 산 중턱에는 무장한 캄보디아 군인들의 초소가 구축되어있다. 현재 무력 분쟁은 그쳤지만, 이 사원의 정상적인 북쪽 출입구인 태국에서의 사원 출입은 금지된 상태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태국과의 국경 충돌 이후 사원이 위치한 산의 중턱에 도로를 건설하여 캄보디아에서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씨엠립 및 깜뽕톰을 거쳐 올 수 있도록 접속도로의 포장도 완료한 상태여서 외국 관광객들도 이곳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다만, 사원 주변의 숙박시설은 시설이 낙후된 게스트하우스밖에 없어 씨엠립과 깜뽕톰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한다면, 충분한 관람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쁘리아 비히아 사원의 최초의 건축 시기와 관련된 직접적인 기록은 불행히도 찾아볼 수 없지만, 5개의 비문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사원 건축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프랑스 비문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이 사원은 아마도 야쇼바르만 1세(재위 889-910년)의 시기에 건축이 시작되어 앙코르 시대의 전성기인 수르야바르만 2세(재위 1113-1145년) 때에 끝난 것으로 여겨져, 대략 300년에 걸쳐 개축과 증축이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명예 기자 앙나리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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