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신탄진중학교 교사 |
'주연에서 주인공으로. 나는 영화가 되었다.'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연기하는 동안 자기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연기가 완벽할수록 관객의 찬사를 받으니, 배우의 삶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배우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살아갈 때 그의 삶 자체는 빛나는 영화가 된다. 그렇다면 교단에서 나는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신탄진중학교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이 학교에 갓 부임했을 때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겠다는, 오래전부터 꿈꿔온 교사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다소 치기 어린 모습으로 교직 생활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보다는 가르치는 기술에 주목했고, 어떻게 하면 내 수업을 좋은 의미로 포장할지 고민하던 날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교육 현장의 '주연'으로서 훌륭한 교사의 단면을 흉내 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척 부끄러워졌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수업하기를 희망했던 학년, 희망했던 업무에 배정됐음에도 학년 초부터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지만 수업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이어왔고, 최근 몇 주간 1학년 아이들과 수업 시간에 공정한 선거를 홍보하는 뮤직비디오 제작 활동을 했다. 아이들의 손을 거쳐 선곡과 개사, 촬영과 편집이 이뤄지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여러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하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감사하게도, 모둠에서 역할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고 자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활동의 특징은 모둠 구성원 모두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도록 규칙을 정해 두었다는 점이다. 규칙에 따라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자기가 만든 작품의 배우가 되고, 배우들은 모둠에서 작성한 스토리보드에 따라 연기를 한다. 하지만 연기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라기보다, 아이들에게는 실제 자신의 삶이 배우로서의 삶보다 먼저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화면 속 아이들의 모습은 부자연스럽게 보일지라도 오히려 그 모습 자체로 자연스럽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아이들의 삶 자체에 주목했다. 학급에서 만든 작품들을 각 반에서 상영하는 'VIP 시사회'를 열었더니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감독이자 배우인 진귀한 현상이 일어났다. 상영 전 감독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고, 여러 작품은 마치 어떤 영화제의 단편 영화를 상영하는 것처럼 차례대로 이어서 공개되었다. 이 시사회의 특징은 상영 후에 감독님들을 앞으로 모시고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다. 이 자리에서는 모두에게 '감독님', '배우님'의 호칭을 썼고, 아이들도 영화제 콘셉트에 몰입해 서로를 존중하며 소감과 질문을 나누었다. 배우로서 아이들은 출연 분량에 따라 주연과 조연이 나뉘었을지 몰라도 작품에서는 모두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화면 속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한껏 연기하기보다는 자기 그 자체를 보여주었으니, 아이들은 이미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일상에서도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을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살도록 조명하는 것이 교사로서 나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은 누군가의 것도 아닌 오로지 나의 것이며, 시선에 담긴 진심은 배우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나 역시 '주인공'이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조명하려면 교사인 내가 먼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배우의 삶을 내려놓고 기꺼이 주인공으로 살겠다. 소원 신탄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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