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혼돈의 시대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혼돈의 시대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4-11-25 10:23
  • 신문게재 2024-11-26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2023120401000190300005941
송복섭 교수
반백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세상을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가는 여전한 물음이다. 특히 정의에 대한 믿음과 올바른 도덕이 현실에서 흔들리는 것을 목격할 때 더욱 그렇다. 힘의 논리로 전쟁을 불사하는 국가권력이 그렇고 정적을 무너뜨리려 혈안인 정치도 그렇다. 선거에 이기려고 발전을 이끌 비전보다는 유권자의 탐욕에 기대어 공약을 남발한 뒤 당선 후에는 약속을 지키지도 못한 채 구차한 변명으로 자리만 보존하려는 선거판도 그렇다. 그래서 팔십이 가까운 가수 나훈아도 그 물음을 소크라테스에게 돌렸나 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전례가 없는 초박빙이라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거뜬히 상대를 제쳤다. 성 추문에다 흠결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 추방을 외치며 역설적으로 이민자 출신들로부터 많은 표를 받아 당선됐다고 한다. 먼저 정착한 이민자들이 경쟁자로 등장한 나중 온 이민자들을 쫓아 달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이기심에 불을 지핀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미국 우선을 외치며 경쟁국들에 어마어마한 관세를 물리겠다고 하고, 환경재앙에 큰 책임 있는 나라임에도 세계가 함께 하는 '지구 살리기' 운동에는 돈이 든다는 이유로 빠지겠다고 한다. 한때 이민자의 나라, 세계의 보안관, 자유와 꿈의 나라를 자처하는 자존심은 벗어던졌다.

연일 매스컴에 보도되는 우리나라 정치 뉴스들은 혼전에 혼전을 거듭한다. 국민의 처지에선 먹고사는 문제도 아니고, 과거 그러려니 넘어갔을 법한 일들도 굳이 들춰내 호들갑으로 싸움판을 만든다. 침소봉대된 사건들은 고발에 고발을 거듭하고, 율사들은 정의를 고민하기보다는 혹여 있을 후환에서 벗어날 길을 찾느라 전전긍긍하는 눈치다. 검찰은 무리하게 기소하고 판사는 이를 뒤집고 정치권은 입장의 유불리로 기소나 판결 내용을 문제 삼고 언론은 앞다투어 싸움을 부채질하고 보수와 진보로 나뉜 단체들을 싸움판을 거리로 이어간다. 국민은 이제 일상이 된 이전투구에 진저리가 나서 걱정도 잊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1940년대 후반에 쓰여 1953년 초연된 부조리극이라고도 하며 희비극이라고도 불린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는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매년 상연되는 듯한데, 작가 사무엘 베케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본 세상을 희극이기도 하고 비극이기도 하여 부조리로 가득한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나 보다. 극 중에 기다리는 고도는 끝내 나타나질 않고, 두 주인공은 포기하는듯하다가도 또다시 기다리자는 것으로 끝난다. 최악의 전쟁을 겪으며 이성에 대한 신뢰는 무너지고 또 다른 희망을 꿈꾸지만, 그 희망조차 안 보이는 현실을 고발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싶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듯 인간은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줄 리더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역사상 혼돈의 시대에는 독재자가 출연했다. 율리우스 시저는 혼란에 빠진 공화정기에 자신을 독재자로 임명하며 제정의 길을 열었고, 1930년대 독일에서는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가 탄생했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 좌우익의 사상적 혼란기를 틈타 김일성이 권력을 잡았으며, 4·19 혁명의 어수선한 시기에 군인 출신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다. 전두환도 그렇게 등장했다.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겠는 혼돈의 시대에 우리는 독재자를 기다려야 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독재자의 최후와 역사적 심판을 통해 뼈저리게 배웠다.

다른 한편, 혼돈의 시대에는 훌륭한 리더가 탄생하는 기회를 만드는지도 모른다.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을 쓴 미국의 역사가 도리스 컨스 굿윈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분석한 뒤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린든 존슨을 혼돈의 시대에 등장한 훌륭한 리더로 꼽았다. 굿윈이 강조하는 리더쉽이란 협상과 소통으로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36대 대통령을 지낸 린든 존슨의 동료들로부터도 배척당할 것을 각오하고 꾸준한 대화와 소통으로 인종과 계급적 차별을 없애는 민권법 제정을 이끈 리더십을 칭찬한다. 모든 의원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사비로 저녁을 대접하며 위스키와 시가를 권했다고 한다. 간절히 그런 리더가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백석대·백석문화대, '2024 백석 사랑 나눔 대축제' 개최
  2. 한기대 생협, 전국 대학생 131명에 '간식 꾸러미' 제공
  3. 남서울대 ㈜티엔에이치텍, '2024년 창업 인큐베이팅 경진대회' 우수상 수상
  4. 단국대학교병원 단우회, (재)천안시복지재단 1000만원 후원
  5. 남서울대, 청주맹학교에 3D 촉지도 기증
  1. 1기 신도시 첫 선도지구 공개 임박…지방은 기대 반 우려 반
  2.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 도안신도시 변화
  3.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4.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연내 착공 눈앞.. 행정절차 마무리
  5. 대덕구보건소 라미경 팀장 행안부 민원봉사대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대전 분양시장 변화바람… 도안신도시 나홀로 완판행진

올해 대전 분양시장 지형도가 도안신도시로 변화한 분위기다. 대다수 단지에서 미분양이 속출했는데, 유일하게 도안지구의 공급 물량만 완판 행렬을 이어가며 수요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하반기 일부 단지의 분양 선방으로 기대감을 나타내면서도, 내년에 인건비와 원자잿값 상승,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의무화 등으로 인한 분양가 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21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분양한 도안 2-2지구 힐스테이트 도안리버파크 2차 1·2순위 청약접수 결과, 총 1208세대(특별공급 제외) 모집에 1만3649건이 접..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전국 검객들 한 자리에"… 2024 대전시장기 펜싱대회 성료

대한민국 펜싱의 역사를 이어갈 원석을 찾기 위한 '2024 대전광역시장기 전국생활체육 펜싱대회'가 뜨거운 열기 속에 막을 내렸다. 시장배로 대회 몸집을 키운 이번 대회는 전국에서 모인 검객과 가족, 코치진, 펜싱 동호인, 시민 2200여 명이 움집, '펜싱의 메카' 대전의 위상을 알리며 전국 최대 펜싱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23~24일 대전대 맥센터에서 이틀간 열전을 벌인 이번 대회는 중도일보와 대전시체육회가 주최하고, 대전시펜싱협회가 주관한 대회는 올해 두 번째 대전에서 열리는 전국 펜싱 대회다. 개막식 주요 내빈으로는 이장우..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