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
이런 와중에도 값진 성과를 거뒀다. 대전시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일군 기회발전특구와 국가첨단전략산업 바이오 특화단지 지정은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판이 될 것이다. 방동 윤슬거리 조성 사업을 완료하고 반다비체육관을 개관했다. 전국 최초의 테마가 있는 사계절 축제는 더 풍성해졌다. 성과는 성적표로 이어졌다. 지속가능한 도시 평가에서 자치구 부문 종합 1위를 차지하고, 한국서비스품질지수 조사에서 4년 연속 1위에 올랐다. 매니페스토 경진대회 3년 연속 최우수, 대한민국 SNS 대상 최우수, 거버넌스 지방정치대상 최우수 등을 수상했다.
설계의 계절이다. 내년도 목표를 세우고, 예산을 짜는 것은 이 시기의 중요한 일이다. 창업, 마을, 돌봄, 문화 등 4대 혁신을 가속화해 기회와 참여의 도시, 포용과 활력의 도시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주민의 삶에 필수적인 인프라 사업도 차질 없이 추진한다. 이러한 목표와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총 7917억 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 의회에 심의·의결을 요청했다. 올해 예산보다 3.0%가량 증가했다. 전년도 증가율 6.8%와 비교하면 다소 낮아졌다. 한정된 재원이지만, 서민의 삶과 직결된 분야는 가급적 늘리려고 노력했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목표와 비전을 세우고 예산안을 편성했다. 내년 전망도 밝지 않기 때문이다.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 등 3고(高) 현상의 경고음과 함께 나라살림과 가계살림에 적신호 켜지고 있다. 지방살림도 예외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 대규모 교부세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도 6조 5,000억 원 규모의 지방 교부세·교부금 집행이 보류될 위기에 처했다. 역대급 세수 결손이 주된 원인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의 경우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더 심각한 것은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구체적 실행 방안을 현재로서는 찾기 어렵다. 급기야 이달 초 71명의 기초자치단체장은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불안과 위기의 시대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담아 성명을 발표했다. 극단적 대치와 갈등을 멈추고 민생을 위한 정치 복원을 요구했다. 최고 책임자의 결자해지(結者解之)도 촉구했다. 희망으로 가득해야 할 결산과 설계의 시기에 단체장들이 오죽했으면 이런 성명을 냈겠는가.
최근 경희대 교수들의 시국 선언문이 화제다. 유려한 문장과 파격적인 형식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유국답다'는 호평을 받았다. 선언문은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글을 맺는다. 선언문이자 반성문으로 이 글을 읽었다. 다짐의 글로도 읽힌다.
불안과 위기의 시대다. '폐허'는 그런 시대의 은유다. 엊그제 유성구의회에서 2025년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施政)연설을 하며, 그래도 희망이란 단어를 생각했다.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동체를 그렸다. 그런 희망과 다짐을 시정연설에 담았다. 다 함께 더 좋은 유성을 향한 발걸음은 내년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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