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자유주의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있습니다. 흑인 미국, 백인 미국, 라틴계 미국, 아시아계 미국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있습니다."
이 명연설은 선거가 있을 때면 되뇌게 된다. 현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득표율로는 50%를 갓 넘겨서 당선되었다. 그런데 마치 보수 백인층의 승리인 것처럼 행세한다. 비단 미국선거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도 50%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지금 윤 대통령을 보면 그에게 던지지 않은 50% 이상의 표는 그냥 사표(死票)였을 뿐이다. 전 국민의 지지를 받지 않아도 국정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은 다수결의 원칙인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면서 아킬레스건이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 국정 동력을 얻는다는 것은 그저 민주주의 국가의 이상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제 식구 챙기기만 하는 것도 꼴사나운 일이다. 최근 대통령 국정수행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20%대 초반을 맴돌고 있다. 단임제고 지지율이 어떻든 내 갈 길 간다는 뚝심은 흉볼 일은 아니다. 문제는 민심은 여론조사에서만 그치질 않는다. 서서히 물밑에서 올라오고 있다.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교수들이 전국적으로 늘어가고,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권 퇴진 촛불집회가 매주 군불을 때고 있다.
경희대학교·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226명의 이름으로 낸 시국선언문은 그 문구가 매우 인상적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에 거짓이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이 문구는 윤 대통령이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 선거를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에게 욕 안 먹고 원만히 하길 바라는 일을 국정농단이라 한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다시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국정운영과 국정농단을 놓고 아직은 진영 간에 기 싸움을 벌이는 형세이다. 여기에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법정 선고가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나오면서 전선은 더 격한 대치 상황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치는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시계 제로인 상황이다.
이 정권은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인가? 슬기로운 해법을 찾을 것인가? 국민의힘 국회의원 8명만 이탈하면 탄핵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전철을 밟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같이 정치 진영이 확고한 상황에선 호기롭게 나섰다가 낙인만 찍히고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십상이다.
지금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은 사상 최고치이다. 경제학자들은 모든 경제지표가 대공황 직전의 징조를 보인다는 말을 한다. 정말 주식이나 부동산같은 실물가치는 추락하고, 비트코인같은 투기성 자본만 판을 친다.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고 거리로 내몰린다면 그때는 진영 간의 집회가 아니고 시위 사태를 맞을 것이다. 아마 이 정권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은 윤 대통령에게 국정을 잘 운영해 달라고 48.56% 표를 던졌지, 위기를 자초해 계엄령이나 발동하라고 대통령 자리를 주지는 않았다. 그때는 거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재명 방탄 집회'라고 조롱하기도 힘들 것이다. 차라리 '김건희 특검'을 받아들여 법치주의의 시험대를 삼아보는 것이 어떨지 싶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탄핵집회의 동력도 상실시키고, 지루한 법정 공방을 계속하는 동안 대통령 임기도 무사히 채울 지 모른다. 국민의힘도 속내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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