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축구장에서 울려퍼진 찬송가 '할렐루야'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축구장에서 울려퍼진 찬송가 '할렐루야'

  • 승인 2024-11-14 12:37
  • 신문게재 2024-11-14 18면
  • 금상진 기자금상진 기자
내게 강 같은 평화,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 '할렐루야'

교회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알 법한 찬송가 '내게 강 같은 평화' 요즘도 부흥성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노래가 한때는 K리그 응원가로 사용됐던 시절이 있었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축구팬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기자가 축구라는 스포츠를 처음 접했던 1981년 당시 6살 꼬마에게 이 노랫말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2020030201000132900002801
뉴스디지털부 금상진 기자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옛 자료를 비교해보니 당시 열렸던 경기는 1981년 4월 11일 한밭종합운동장(당시 대전공설운동장)에서 열린 한국 프로축구팀 '할렐루야 축구단'과 홍콩 프로팀 '세이코와'의 친선 경기였다. K리그가 출범도 하기 전 지방에서 열린 국제축구경기는 대전시민들에게는 대형 이벤트였다. 경기장 좌석도 제대로 깔리지 않았던 한밭종합운동장에는 수천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내게 강 같은 평화'는 끊임없이 반복됐다. 응원가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절이라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었다.

할렐루아 축구단은 1980년에 창단한 K리그 1호 프로축구단이다. 개신교 신자였던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추도로 창단했고 1983년 K리그 출범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80년대를 대표했던 축구 스타 이영무, 신현호, 박성화, 박창선이 할렐루아 출신의 선수들이다. 할렐루야 축구단은 선교 목적으로 만들어진 축구단이지만 한국 축구 역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할렐루야의 창단을 시작으로 선경그룹(현 SK)이 두 번째 프로팀 유공코키리(현 제주유나이티드)를 창단했고 실업팀 포항과 대우, 국민은행이 합류하면서 K리그의 전신 '슈퍼리그 83'이 탄생했다.



열혈 축구팬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선경 최종현 회장에게 개신교팀 할렐루야가 탄생했으니 '아미타불'이라는 팀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던진 농담이 유공 팀 창단으로 이어졌다는 일화는 축구계에선 정설처럼 남아 있다.

주님의 축복 속에 탄생한 할렐루야의 강 같은 평화는 아쉽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83수퍼리그 우승 후 주축 선수들의 이적과 은퇴가 이어지며 전력이 하락했고, 1984시즌에는 10승 9무 9패로 4위, 1985시즌에는 3승 7무 11패를 기록하며 최하위로 내려앉았다. 1985시즌을 마지막으로 할렐루야는 팀 창단의 본래 취지였던 선교에 집중하기 위해 아마추어로 전환하며 프로에서 탈퇴했다. 명분은 선교였지만, 구단 운영과정에서 드러난 자금난과 전력약화가 원인이었다. 실업리그에서 팀의 명맥을 유지했던 할렐루야는 1997년 IMF로 또 한 번의 타격을 받았고 이듬해 1998년 공식 해체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자가 할렐루야 축구단을 다시 만난 것은 15년이 지난 후 2014시즌 대전이 프로 2부 리그로 강등됐던 첫 시즌이었다. K리그 챌린지로 불렸던 프로 2부에는 '고양자이크로FC'라는 팀이 있었는데 이 팀의 전신이 바로 '할렐루야'였다. 1999년 재창단을 선언하며 실업리그에서 활약했던 할렐루야가 2013시즌 프로로 전환하며 고양시를 연고로 K리그 2부(K리그 챌린지)에 참여한 것이다. 구단 역사 승계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고양자이크로는 할렐루야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구단임을 꾸준히 주장했다.

고양자이크로FC로 부활한 할렐루야는 아쉽게도 80년대 전성기의 색깔을 찾을 수 없었다. '내게 강 같은 평화'로 유명했던 응원가도 없었고 서포터도 소수에 불과했다. 종교 색채가 강했던 팀 색깔이 강한 탓에 팬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연고지인 고양시민들도 팀의 존재 여부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프로 입문 첫해 6위로 비교적 준수한 성적을 거둔 고양자이크로는 2014, 2015시즌 8위 2016시즌 최하위 11위로 내려앉았다. 고양자이크로의 마지막 성적이었다. K리그의 시작을 알린 구단, 6살 꼬마였던 기자에게 축구라는 스포츠를 알려준 할렐루야는 쓸쓸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금상진 기자 jodpd@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유등교 침하 4개월… 임시교량 지연에 도마큰시장 상인과 교통경찰 '시름'
  2. [사설] 'N수생' 몰린 수능, 무탈하게 치러지길
  3. [사설] 아산시 등 '대도시 기준' 전향적으로 낮춰야
  4. 교권침해 판정에 사과 대신 행정소송… 대전교사노조 "경각심 일깨울 판정 촉구"
  5. [기획] 충청권 유니버시아드 아이콘될까… 충남과 보령 그리고 비치발리볼
  1. 2025학년도 수능 D-1, 유의사항 읽는 수험생들
  2. 소방안전교부세 특례 일몰에…충청권서도 반대 목소리
  3. 대전서부교육지원청 수석교사-신규교사 1대 1 수업나눔장학
  4. 우승한 한밭대 교수, 실전 창업경험 담은 '생존창업 1%' 출간
  5. 태양 코로나그래프 국제우주정거장에 무사히 설치… 2025년 1월 본격 관측

헤드라인 뉴스


수능 끝, 본격 `대입 레이스`…가채점 바탕 정시전략 수립을

수능 끝, 본격 '대입 레이스'…가채점 바탕 정시전략 수립을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나고 본격적인 '대입 레이스'가 시작된다. 수시모집 대학별 고사와 함께 12월 31일부터는 정시모집 원서접수에 돌입한다. 수험생들은 12월 6일 수능성적 발표 전까지 가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정시 지원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입시 전문가들은 가채점 기준으로 정시 지원 가능성을 분석하고, 수능성적 발표 후에는 최종 지원 대학과 학과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시모집에서는 수능성적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대학별 수능 영역별 반영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철저히 분석해 지원전략을..

`역대 최대 N수생` 2025학년도 수능 작년보다 쉬웠다… 변별력 확보 관건
'역대 최대 N수생' 2025학년도 수능 작년보다 쉬웠다… 변별력 확보 관건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14일 전국 85개 시험지구 1282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N수생이 역대 가장 많이 응시한 이번 수능은 전반적으로 전년도 수능보다 체감 난이도가 낮아지면서 변별력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025학년도 수능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출제했다는 게 출제본부의 설명이다. EBS 연계율을 평균 50% 수준으로 하고 2023년 6월 교육부의 사교육 경감 대책에 따라 이른바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출제됐다. 최중철..

무인카페 비밀번호 알아내 500만원어치 무단취식한 고등학생들
무인카페 비밀번호 알아내 500만원어치 무단취식한 고등학생들

대전 한 무인카페에서 10대 무리가 돈을 내지 않고 음료를 수차례 뽑아 마신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점주는 이 학생들로 인해 500여 만 원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중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일 한 무인카페 점주로부터 '돈을 내지 않고 음료를 뽑아 먹은 학생들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해당 점포의 키오스크(무인 단말기)에는 관리자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무료로 음료를 먹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점주는 비밀번호를 통해 마신 음료의 금액이 과도하게 많다는 사실을 파악한 후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인근 고등..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우리 딸 파이팅’ ‘우리 딸 파이팅’

  • 수능 끝…‘고생했어 우리 딸’ 수능 끝…‘고생했어 우리 딸’

  • 수능 기다리는 수험생들…‘긴장되는 순간’ 수능 기다리는 수험생들…‘긴장되는 순간’

  • 2025학년도 수능 D-1, 유의사항 읽는 수험생들 2025학년도 수능 D-1, 유의사항 읽는 수험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