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한 대전대 교수 |
그 연장선에서 우리는 누구 하나 존경하는 정치인을 갖지 못했거니와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한다. 많은 미국인은 워싱턴을, 링컨을, 레이건 등등을 존경한다고 쉽게 이야기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상황은 정치인들이,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한 국민 자신들이 만든 것이다. 표를 얻거나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국민이야 어떻게 되든, 나라가 어떻게 흘러가든 관심이 없다. 국가 최고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더는 표를 얻을 일이 없는 위치에 있다. 오직 국민의 행복이나 민족의 앞날, 국가의 발전만을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탄받는 인사, 국민의 정서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는 정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기용하거나 시행한다. 후보 때나 당선된 이후나 국민을 갈라치기 하는 데 여념이 없는 것이다. 이는 물론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일찍이 우리는 이렇게 분열된 시대를 살아온 적이 없었다. 일제가 우리의 현실을 왜곡해 만든 식민사관이 있다. 그들은 식민 지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 사관을 만들었다. 이들은 붕당 정치를 예로 들며 조선왕조는 내내 당파로 갈라지고 싸움질만 했다고 한다. 그 결과 조선은 단결하지 못하고 시대의 대세를 따라가지 못한 채 궁극에는 정체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조선이 붕당 정치로 갈라져 오랜 세월에 걸쳐 분열되고 갈등했다는 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때는 정치하는 몇몇 관료들만의 일이었을 뿐, 조선의 대다수 백성에게까지 이 분열의 불온 성이 전염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이 시대 백성들은 하나였지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우리는 불신시대를 넘어 분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인의 논리에 상동화(相同化)된 국민이 점점 늘어나면서 모든 이들이 정치가 만든 분열에 노출되어 있다. 어느 정치인도, 어느 제도도 분열된 국민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섬나라가 가진 한계, 곧 협소한 공간에서 싸우면 도망갈 수 없는 현실을 인지하고 이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자신들의 음식을 일식(日食)과 더불어 화식(和食)이라고 불렀다. 여기에는 더불어 잘 먹고 지내자는 뜻이 담겨있다. 중국은 가운데에서 빛나는 나라, 곧 중화(中華)라는 이념을 갖고 있다. 중화의 테두리에서 한족을 비롯한 모든 소수민족이 함께 잘 살자는 뜻이리라. 이들 모두는 분열보다는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통합의 문제에 있어 우리는 이들 나라보다 훨씬 좋은 조건과 환경을 가진데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韓國)의 韓은 나라 이름 '한'이다. 國도 나라 '국'이다. 한자가 아니라면 '한'은 하나라는 뜻을 갖는 순우리말이고 일(一)의 의미도 있다. 우리는 아메리카를 미국(美國)이라 하고 일본은 미국(米國)이라 한다. 우리는 이 나라가 아름다울 수 있지만, 패전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일본의 정서로는 그저 쌀이 많은 나라일 뿐이다. 국명을 한자에만 집착할 필요가 있는가. 한자를 떠나면, 한국은 '하나의 나라'가 된다. 대한민국 역시 크게 하나 된 국민의 나라가 되고, 한반도는 하나 되는 땅이 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한식이다. 한식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찬을 갖고 있다. 이런 반찬들은 우리의 입에서, 혹은 상대방의 입에서 하나로 모여 조화로운 맛을 낸다. 그러니 한식은 이름으로나 내용으로나 '하나의 음식', '조화의 음식'이라는 의미가 된다. 분열의 시대로는 우리들의 미래, 유토피아가 절대 보장되지 않는다. 하나의 나라(한국)에서 하나 되는 음식(한식)을 알고 먹으며 분열과 상처를 넘어 '하나의 조국'으로 나아가자. /송기한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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