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우송중 교사 |
소설 동아리 지도교사로서 학생들을 지도했을 때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밤새 자신이 써 내려간 소설의 일부를 들고 찾아와 읽어봐 달라고 조르며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내 평가를 기다리던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친구들로부터 소외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되는 학생이었다. 당시에 입시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책상 위로 수북이 쌓인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읽느라 눈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하루만이라도 원고를 가져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이 학생은 하루도 빠짐없이 수십 장의 원고를 책상 위에 두고 갔다. 졸업 후 얼마 안 있어 이 학생은 마침내 자신의 소설책을 출간했다며 연락해 왔다. 이때 이 학생의 반짝이는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수업 시간에 무기력한 학생들의 얼굴을 보며 교사인 나 자신까지도 기운이 빠져 무기력했던 어느 때였다. 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무심코 음악과 영화의 바탕은 국어에 있다는 말을 던졌을 뿐인데 그 한 마디에 평소 어둡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했던 몇 학생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교무실로 찾아왔다. 자신들이 영화 동아리를 만들었으니 지도교사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 반짝반짝 빛을 내던 그 눈망울이 아주 예뻤다.
내신 등급이 낮아 대학 진학을 포기하려는 학생이 있었다. 원서 마감이 임박한 어느 날, 밤늦은 시각까지 교무실에 마주 앉아 교사나 학생이나 졸린 눈을 비벼 가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나갔다. 학생은 희망 없는 얼굴을 하고는 맥없이 앉아 있을 뿐이어서 교사인 나조차도 의욕을 잃어 야간의 피로감은 더욱 가중됐다. 그런데 자기소개서 작성이 마무리되자 학생은 자기소개서에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동자를 반짝이기 시작했다. 학생이나 교사나 입시 결과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이 학생은 이미 입시 결과와는 상관없이 자신 그 자체의 모습으로 빛을 내고 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빛의 순간은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서 근무했을 때다. 그때 나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빛을 뿜어내는 별들의 존재를 목격했다. 처음에는 놀라웠고 그 다음에는 감동했다.
하노이한국국제학교는 베트남인을 대상으로 무료 한국어학당 야학을 열었다. 국어 교사로서 나는 외국인들의 한국어 학습에 대한 호기심 반, 베트남 학생에 대한 호기심 반으로 수업을 맡기로 했다. 수업이 시작되어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선생님을 맞았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고 지나치게 경직된 모습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일었다. 하지만 나와 내 수업을 존중해 주는 학생들의 진심 어린 모습들이 이어지면서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몹시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30여 명의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했는데, 그중에는 2시간을 버스를 타고 왔다가 막차가 끊어질까봐 2교시 수업 중 1교시만 수업을 듣고는 또다시 2시간을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학생도 있었고, 1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와서 강의를 듣고는 그야말로 별빛뿐인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도, 여름 방학 때 시외버스로 4시간 거리의 지방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고등학생도 있었다. 나머지 학생들도 낮에는 일하랴 밤에는 공부하랴 힘겨운 사정은 비슷했다. 우리는 수업 시간이 끝난 후에 경비 아저씨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수업을 계속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거리가 먼 지역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 휴일 수업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급기야 하노이한국국제학교 근무 기간이 끝난 후에도 3년을 더 하노이에 머물며 한국어를 가르쳤다. 그저 호기심으로 시작된 한국어 강의가 학생들이 내뿜는 밝은 빛에 이끌려 5년 동안이나 불타올랐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던 학생들, 교사의 마음까지도 밝게 비추며 교직 생활의 지표가 되어 준 학생들, 이제는 교직 생활을 넘어 내 삶의 방향을 비춰주는 등대가 돼 준 학생들,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고 교사의 마음까지도 환하게 밝혀주는 모든 학생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윤성민 우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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