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 논산경찰서장 |
A는 한 아파트 상가 내에서 이용원을 운영했는데, 어느 날 같은 상가에 B가 미용실을 열었다. 그래서인지 수입이 줄어들게 되었다. A는 경쟁업체인 B를 공중위생법위반죄로 고발코자 했다. A는 증거를 확보할 목적으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C로 하여금 B에게 전화를 걸어 "귓볼을 뚫어 주느냐?"는 용건으로 통화하게 하고 그 내용을 녹음하게 했다.
A의 고발로 B는 수사를 받게 된다. 그 과정에서 B는 A가 고발한 것과 증거로 B와 C사이의 녹음물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B가 통신비밀보호법위반으로 A를 고소했고, 검사는 A를 공소제기 했다.
만약 이 사건이 필자한테 배당되었다면 어떻게 처리했을까? 아마도 대화 당사자 사이의 녹음이라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하지만 담당 검사는 기소한 것이었다.
제1심과 제2심 재판부도 소싯적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즉, 양자 간 전화통화에서 한쪽 당사자가 몰래 녹음한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럼에도 검사는 용단을 내리고 대법원에 상고해 마침내 2003년 파기환송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고 만다.
대법원은 위 사안을 대화 당사자 사이의 녹음물로 보지 아니했고, 감청의 일환으로 보아 유죄취지의 판결을 한 것이었다. 즉, 전화통화의 당사자가 직접 녹음하면 합법이지만, 타인을 이용하여 녹음하면 불법이라는 것이다.
우리 법제는 대화 당사자 간 녹음은 합법이고, 대화 당사자가 아니면서 녹음하면 위법이라고 한다. 위법한 녹음물에 대해서는 형사상 증거능력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언론 등 외부에 공개하는 것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대화 당사자 일방 녹음이 합법화 취급되고 외부에 공개되어도 형사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모든 통화를 녹음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어떤 직업군은 아예 녹음기능을 활성화시켜 놓기도 한다. 합법적인 녹음물이라 하여 몇 년이 흘러 세상에 공개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일 것이다. 비밀녹음이 합법이라 하여도 언론에 공표되는 것까지 동의한 것은 아니지 아니한가?
우리 헌법은 통신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한때 농으로 했든 또는 진심으로 했던 나의 말들이 몇 개월 혹은 몇 년이 지나 세상밖으로 나오는 것은 나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고 본다. 상대방 모르게 녹음하는 것을 떳떳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명국가가 취할 자세는 아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1973년부터 대화 당사자 중 일방 비밀녹음을 위법수집증거로 봤다.
X와 Y는 부동산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5억을 주기로 구두합의 했다. 그런데 건물주 X는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 공증서에는 매매금액을 4억으로 하고 1억은 현금으로 요구하였고 Y는 이에 동의하였다. Y는 즉석에서 현금 1억을 주면서 차용증 형식의 영수증을 받았다. 차용증은 공증이 끝나면 찢어버리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X는 계약 전과정을 Y몰래 녹음했다.
문제는 Y가 잔금을 지급하면서 1억 원의 차용증을 제시했고, 잔금에서 상계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X는 Y를 고소했고 그 증거로 녹음물을 제시하였다. 연방헌법재판소는 그 녹음물은 사적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사익보다 공익이 크다며 녹음물의 증거능력을 배제해 버렸다.
최근 경찰의 수사권이 일부 인정된 후 수사관의 업무가 더 힘들어졌음을 피부로 느낀다. 힘들다고 하여 한탄만 할 수 없다. 검사가 귓볼을 뚫은 것처럼, 젊은 경찰관들이 또 다른 귓볼을 뚫어보면 어떠할까
/유동하 논산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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