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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
나는 바쁘고 종종걸음치는 일이 반복되고 무엇인가에 쫓기면 이상하게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이라는 한시 구절이 나도 모르게 떠오른다. 젊은 시절부터의 버릇같은 것인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바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지속되면 이 시구절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되뇌여진다. 시구절이 떠오르면 자동적으로 양쪽으로 나무들이 휘어져 늘어져 있고 잔잔히 흐르는 넓지 않은 강물 위에 복사꽃이 흩날리고 하얀 점들이 떠내려 가는 장면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이 시는 중학교 때 한문시간에 배워서 알게 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유독 이 구절이 잊히지 않고 힘들고 지칠 때 마다 문득 문득 떠 오르는 것은 아마도 이 시구절이 담고 있는 시각적 이미지 때문이 아닌가 싶다. 강물 위에 하얀 꽃잎이 점점이 떠내려가는데 이곳은 이 세상이 아닌 별천지라고 했으니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저런 별천지로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과 연결되는 듯하다. 일종의 도피같은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러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나에게는 일종의 주문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시의 제목도 누가 지은 것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고 이 두 구절만 선연하게 머리 속에 담겨 있어서 문득 궁금해서 찾아 보았던 적이 있다. 찾아보니 이 시는 당나라 시인인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의 마지막 두 구절임을 알게 되었다. 앞부분은 문여하사서벽산(問餘何事棲碧山)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閒)으로 되어 있다. 번역한 내용은 이러하다. "푸른 산에 깃든 마음 무엇이냐 물어와도, 답없이 웃을 뿐 마음은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띄운 물결 아득히 흘러가니, 여기가 바로 별천지 인간 세상 아니라네" 아마도 중학교 때 배우면서 앞 구절보다는 뒤의 두 구절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더 강하게 마음 속에 각인되었던 듯하다. 누구나 바쁜 일상에 얽매여 살기보다는 세상의 욕심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한평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랴만 실상 그렇게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산속에 마음 한가로이 사는 것이 꼭 행복할 것같지도 않다. 내 성격으로 보아 아마도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면 금방 싫증이 나고 적적해서 견디기 힘들 것같은 생각이 든다. 나 뿐 아니라 주위의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힘들고 지칠 때 마다 여전히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라는 시구절이 나도 모르게 되뇌여지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 아마도 실제로 산속에 가서 살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갖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번잡한 일상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마치 이곳이 별천지와 같은 곳이라고 자꾸 다짐하면 정말 현실의 닥친 일들이 조금 여유를 갖게 변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담겨 있을 것이다. 화엄경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일체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뜻이니 번잡하고 복잡한 일상들도 마음 먹기에 따라 별천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으니 나는 이 시구를 요즘도 주문처럼 되뇌인다.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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