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내가 《세종마루시낭독회》회원이 된 이래, 매번 행사마다 1부 사회를 진행했는데 순서에 없다니 궁금했다. 곧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국장님, 행사 순서에 국장님 이름이 없어요."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실수로 빠트린 것은 아닌가 해서였다. 곧바로 시인한테서 답장이 왔다. '집에 사정이 있어서 이번은 못 하게 되었다며 11월 모임에서 뵙자며, 연락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하긴 가정도 중요하니까, 집안 행사도 빠질 수 없겠지. 모임 행사에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 한 번이야, 생각은 하면서도 한편 시인이 없는 공간에 내가 혼자 있는다는 것이 뭔지 모르게 낯설었다.
그렇다고 이 시인이 내게 특별히 잘해준 것은 아니다. 모임에서 마주치면 그저"안녕하세요"라고 짧게 인사를 하는 정도였는데도. 하지만, 이 시인과의 만남은 필연적이었다. 《세종마루시낭독회》에 가입하면서 사무국장인 이 시인과의 첫 대화가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시인은 시를 통해 나의 내면에 웅크리고 곪아 터진 상처를 치유한다.
소금을 녹이니/ 바닥에 가라앉은 뻘이 보인다/ 순백색 소금의 몸에 뻘이 들어있었다니/ 짜디짠 정신으로/까칠하게 각을 세우고/ 세상의 간을 맞추던/그 정신의 기둥이 뻘이었을까//뻘을 품고/더 단단한 결정이 되어갔을 소금은/ 한번도 뻘을 인식하지 못하고 평생을 살았을지 모른다/어쩌면 뻘과의 관계를 조금은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른다//밑바닥에 가라앉은 뻘처럼/어느 날 치매 병동에서 본 얌전하고 곱던 할머니/세상의 온갖 욕을 종일 읊조리고 있었는데//내가 녹아버렸을때/나를 지탱하던 그 무엇의 모습이/문득 궁금하고 두려워지는 것이다//_「소금의 밑바닥」전문 - 제2시집 『소금의 밑바닥』중에서
이선희 시인 |
다만 인터넷을 검색해서 시인의 시집을 찾았다. 2022년 시집 출간 제3집 『환생하는 꿈』이다. 사진을 찍어서 자랑하듯이 보냈더니 이내 전화가 왔다. "아이코, 제가 시집을 안드렸군요. 말씀하시지요." 덕분에 제1집, 제2집 두 권 받았다.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하기에 얼굴도 볼 겸 내가 세종 가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전해 받았다.
그날 시인은 담담히 말했다. 감히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러나 시를 쓸 운명이었는지 모르겠다며 얘기를 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 도서관에 다니며 우연히 뽑아 든 시집을 읽다가 가슴에 와닿는 무엇이 있었다.
비유와 상징, 함축, 알레고리, 역설 등의 지적인 표현들이 난무하는 시집이 자신의 푸석한 마음을 위로하고 알 수 없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것이 문학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을 정도로 문학에 무지한 상태였다고.
그러던 중 2006년 우연히 대전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최광님 시인을 만나 등단의 절차를 밟았다. 시인의 싹을 일찍 알아봐 준 《시와 경계》 최광님 시인에게 감사한다. 무지한 상태에서 등단하고 시를 쓰는데 앞이 캄캄했다. 궁여지책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과에 편입해서 공부했다. 공부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등단 후 시인의 길이 그리 멋진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되도록 혼자서 취미 정도로 시를 쓰자 했다. 그런데도 시인의 길은 은근히 고난의 길이었다. 혼자 갈 수 있는 길만도 아니었다. 같이 가야 하는 길이었다. 충남시인협회에서 이은봉 교수님과 성배순 시인을 알게 됐고 《세종마루시낭독회》창립에 참석하게 되었다. 사무국장 일도 맡고 있다.
두 번째 시집 『소금의 밑바닥』을 내면서 《애지문학회》 사무국장 제의를 받고 뿌리치지 못했다. 성격이 원만하거나 활동적이지 못해 두 군데 사무국장 업무가 사실은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잘 이끌어주신 위 분들께(김영호 회장, 이은봉 교수, 반경환 주간) 감사드린다.
세 권의 시집 중에 1집 『우린 서로 난간이다』와 2집 『소금의 밑바닥』 시집이 아르코 문학 나눔에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3집 『환생하는 꿈』은 제4회 삶의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광스러운 일도 있었다. '삶의문학상'은 1980년 대전?충남 지역 종합 문예 무크지 '삶의문학'의 정신을 고양한다는 취지로 제정돼 2020년부터 시상하고 있다.
오직 시인으로서의 소망은 오래오래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돌아보면 짧은 시력이고 시집의 양도 빈약하지만, 시인의 길은 녹록지 않다. 지금도 시인이란 직함은 쑥스럽고 익숙하지 않다. 사실 자신이 진정한 시인인가 스스로 의심할 때도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역경이 닥쳐도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의 길을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 힘이 시인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기를 바란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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