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고통 속의 밝은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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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고통 속의 밝은 눈

송전 한남대 명예교수

  • 승인 2024-10-23 16:52
  • 신문게재 2024-10-24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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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 교수
19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는 독일 극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1862~1944)이었다. 그는 독일이 산업화를 선취한 영국과 프랑스와 경쟁하며 절치부심해서 산업화에 진입하고 영토를 확장해 나갈 당시인 1862년 독일 제2 제국의 동남부 변경지역인 쉴레지엔(지금은 폴란드 영토. 당시에 독일제국이 강점했었다.)에서 태어났다. 산업화 첫 단계에서 진행되는 방적산업이 당시 저임금이 보장되었던 이 지역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생계유지형 노동자 파업이 발생한다. 노동자의 인권이나 복지 같은 개념이 없었던 시절 자본가의 이익만을 대변한 국가 권력은 군대를 파견해서 노동자의 최소한의 요구를 총칼로 진압하며 노동자들을 집단사살했다.

이 노동자 저항운동은 당시 급격하게 산업화되고 있던 유럽을 뒤흔든 노사 갈등의 비극적인 참변이었고 이 사건과 집안이 연결되었던 기억들이 어린 하우프트만에게 각인 되어 그는 그 참변이 있은 지 거의 50년이 지난 뒤 쉴레지엔 사투리로 쓴 희곡 <직조공>(1892)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공연금지의 억압 속에서 베를린의 작은 극장에서 공연되었지만 전 유럽을 뒤흔든 폭탄이 되어 지주계급 출신의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노동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제정한 <사회주의자>를 폐기하고 독일사회당(SPD)을 굳건하게 만든 계기를 제공했다. 하우프트만의 이 작품은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자신의 문학이 '고통 속의 밝은 눈'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의 소산이었다고 고백했다.

1928년 12월 남미(南美) 콜롬비아 한 도시에서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집단 학살이 자행되었다. 미국기업이 그곳에 진출하여 바나나 농장을 대규모로 운영하며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 발생했다. 일요일 예배를 마치고 모인 농민들을 향해 동원된 군인들이 기관총을 난사하여 최소 1000명을 사살했다. <바나나 학살>로 명명된 사건이었다. 1927년에 태어난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자신의 가계도 연루된 이 참담한 고통과 슬픔의 기억을 토속 신앙과 마술적 행위와 역사적 팩트를 함께 녹여낸 소설 <백년 간의 고독>(1967)에 담아 발표했다. 그리고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양심은 그 아픔을 가슴에 묻어둘 수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의 소설은 그 후 중남미의 정치적 지형이 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을 발휘했다.

현대 한국문학사상 가장 큰 기쁨으로 기록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하우프트만이나 마르케스의 경우와 유사한 점을 본다. 노벨문학상 심사자가 밝힌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력한 시적 산문'이란 평가는 1980년 광주 5.18 민주항쟁을 담은 그의 <소년이 온다>(2014)와 관련된 언급이다. 1970년 생인 작가가 예민한 나이에 이 참극을 인지하고 이 일이 있는 지 34년 만에 고통을 견디며 소설에 담았고, 그 10년 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무자비한 총질에 쓰러져 누운 젊거나 어린 주검에 살아 남은 자들이 태극기를 덮어주고 목메인 애국가를 부르는 것은 그 주검이 그저 '도륙당한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부서지면서도 영혼을 가지고 있던' 연약한 존재임을? 그러나 존엄의 '인간'임을 한강은 작품을 통해 확인하고 증거했다. 고통 속의 밝은 눈으로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소산이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역사의 왜곡이라 폄훼한 자도 문학의 진정한 힘을 알기에 진실이 영원히 새겨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법정이 끝나는 곳에 '극장'이 칼과 저울을 넘겨받아 범죄를 끔찍한 판결대 위로 낚아채 온다. 독일 극작가가 쉴러의 말이다. 이 '극장'이 또한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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