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대전대 전. 디자인아트대학장 |
건축에 '영혼을 담아달라' 부탁하는 클라이언트(설계 의뢰자)의 멋진 이야기를 시작으로 건축의 일시적 붐 업이 일어 한때 건축지원자가 많이 늘 정도였는데 배경은 마천루였다. 자신의 한계를 잊고 태양에 닿으려 한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처럼 하늘에 닿는 더 높은 건물을 짓고 싶은 고도의 기술적 긴장감은 근대 이후의 건축사에서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수직 건축의 발단은 매우 지혜롭게 대지를 이용하고 싶은 기능적 사고에서 출발하여 건축을 수직으로 모아 비운 대지를 쉼이 있는 장소로 남기기 위한 전략이었다. 또한 많은 거주공간이 동시에 필요해진 도시 확장의 이유도 커져 그 출발은 근로자의 주거를 집합시킴으로 동시에 많은 주거의 수를 확보 할 수 있는 집합 주거로 발전되었다. 지난 세기 초에 보다 합리적인 양질의 공동주거문제에 대한 국제건축 모임이 생겨났고 교통과 교육, 일상의 편익성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하며 도시 주거의 변화와 현대주거에 이르는 많은 형식과 양질의 주거 공급을 도모하게 된다. 이어 판자 모양의 수직 주거들이 속속 등장했고 수직 개념은 공동 주거의 고층화에 기초가 되었으며 점차 고도화한 건축 기술 의지로 도시는 빠르게 수직 초고층으로 빼곡히 채워져 갔다.
미국의 현대도시건축은 대도시 고층건축의 기원이 된 시카고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고층 건축유형을 확대하였다. 실험성도 중요했지만 투기성도 따라 증식하여 도시를 상징하는 소위 랜드마크란 이미지를 통해 고층은 가일층 인간의 욕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되어간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도 잘 보이던 산들이 점차 시야에서 가려지기 시작한 걸 느끼게 되었고 이제는 둘러친 초고층 건축 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프랑스 건축가 오스만의 저층 집합 주거도시를 간직한 올림픽의 도시 파리는 '에펠탑'으로 랜드마크 욕구를 해소했고, 65년에 세운 BT타워 외에 고층이 없던 런던은 고심 끝에 지금은 높이를 마음껏 발산한다. '워키토키'나 '거킨스' 등 외에도 우리의 롯데타워와 비슷한 '더 샤드' 같은 고층이 늘어 가는 추세다.
나폴레옹 시절에 외관이 완성된 밀라노 대성당 두오모의 높이를 넘지 못하던 이탈리아는 석조건축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첨탑으로 알려진 안토넬리아나로 랜드마크를 삼다가 결국 '토레 발라스카'란 중세의 벨 타워를 닮은 고층 복합 건축을 하늘에 올렸고 현대건축가인 지오 폰티의 등장으로 이태리 근대건축의 상징이 된 '피렐리' 빌딩이 이루어지고 이후 많은 고층빌딩들이 줄줄이 들어선다. 하루가 다르게 높이를 갈아치우는 경쟁 속에서도 아쉽게 완성하진 못한 마천루들이 하늘에 이르지 못하고, 마치 이카로스의 추락처럼 미완성으로 흉물이 되어가는 고층건축들이 세상엔 수두룩하며 우리 주변 가까이에도 존재한다. 이들은 때론 발랄한 작가들에 의해 그라피티 예술로 환생하기도 하나 과연 아트일까 범죄일까 끝없는 실랑이가 일기도 한다.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홈리스와 서민 주거로 풀려 성공한 경우이며 사회적 인지도를 국제적으로 확보한 운 좋은 케이스지만 '어번 스쿼팅(무단점유)'이 근본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환경적 측면에서 볼 때 고층이 지닌 근본적인 재해성과 건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다분해서 현실적으로 고층의 열망은 커지지만 그만큼 대가에 대해서도 염려함과 충실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늘어나는 도시의 초고층 건축을 염려하는 학계의 여러 의견과 메시지들은 많지만 고층의 열망은 이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지를 떠난 도시는 점점 높아지며 하늘을 품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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