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기산 김준근, <병신>, 조선말,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 소장 |
『태종실록』태종 17년인 1417년 6월 16일, 시각장애인을 고용하는 특수관청인 명통시(明通寺)가 설치되었다. 명통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협회로서 장애인들을 위한 일거리를 제공하고 자립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명통시에 소속된 장애인들은 임금의 행차 때 경을 읽고 흉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나라의 길흉화복을 담당하였다. 엄연히 국가에 소속되었기 때문에 녹봉을 지급 받으면서 관직 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조선 왕실에서 장애인이라는 편견 없이 관직 등용을 했던 당시 상황은, 지금 현시점에서 보아도 열린 시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의 장애인은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들의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홍대용의 『담현서』에 따르면 '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자는 문 지키는 데로 돌리며, 심지어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한다'라 하여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 대해 강조했다. 과거에도 신체가 불편하다고 해서 본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장애인들은 신체적인 단점을 승화시켜 점목(점치는 일)이나 독경(불경 외우는 일) 등 신성스러운 일에 동원되었다. (그림 2).
(그림2)기산 김준근, <판수독경>,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
이러한 장애인 차별을 금하는 제도가 성립되었던 것을 근거로 조선시대에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차별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전제해야 할 점은 조선시대가 신분사회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왕실이나 양반 사대부 등 상류층에 해당 되는 장애인은 평민이나 천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별을 덜 받았다. 평민이나 천민의 신분인 장애인의 경우 가난에서 오는 멸시도 중첩되었다. 물론 양반가의 장애인도 집안 내부적으로는 차별이 존재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본격적인 차별은 근현대에 들어서부터다. 몸이 불편한 동정의 대상을 넘어, 학대와 배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부정적인 인식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정과 혐오는 지양하고, 비장애인과 같이 고유의 능력과 실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아가 정책 보완은 물론이고 인식 개선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증대되고 있다. 이 외에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등 복지나 제도 외에 실생활 속에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는 정부나 기업 그리고 학교 등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권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편견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더불어 가는 세상이 오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최정민/평론가
최정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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