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높임말 남용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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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높임말 남용 현상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승인 2024-10-20 10:37
  • 신문게재 2024-10-21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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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한국 사회에서 높임말은 오랫동안 예의와 존중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다. 상대방의 나이나 지위에 따라 격식을 갖추고, 언어로 존중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높임말이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오히려 소통의 자연스러움과 명확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법률가로서 법정과 법적 문서에서의 언어 사용을 주시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현상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타인을 지칭할 때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더라도 무조건적인 높임 표현을 사용하는 흔하다. 쉬운 예로,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아버지가 갔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가셨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듣는 할아버지는 기분이 아리송하지 않을까. 심지어 불만을 표현하는 상황에서도 그 대상에 대한 높임 표현은 빠지지 않는다. '매장 셀러님이 너무 불친절하셨어요' 이런 식이다. '매장 직원이 너무 불친절했어요'라고 하면 충분할 텐데, 말하는 화자 자신은 굉장히 예의 바르고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임을 표현하고 싶은 것인지 대상에 대한 높임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높임 표현은 오히려 언어의 자연스러움을 저해한다 할 것이다.

높임말의 과도한 사용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두드러진다. 과거 인터넷 게시판에서 반말이 흔했지만, 요즘은 "~~님", "~~하셨나요?" 같은 존칭이 기본 매너로 자리 잡았다. 익명성을 가진 온라인 대화조차 존칭으로 가득 찬 상황에서, 높임 표현이 빠지기라도 하면 자칫 싸움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다. 상호 간의 존중은 중요하지만, 과도한 예의 표현은 오히려 형식적 관계로 보이게 하는 듯하다.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도 높임 표현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가게 사장님이 ~~ 하셨어요"라는 식인데, 대화하는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에게 높임 표현을 굳이 써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표현은 특히 공적 대화에서는 불필요하게 형식적이고 과장된 느낌을 줄 수 있다.



또한, 최근 공적 문서나 법률 서면에서도 과도한 높임 표현이 상당수 등장하고 있다. "귀하께서 제출하신 서류", "원고의 부모님께서 ~~ 하셨습니다" 같은 문구는 법적 문서의 명확성과 간결성을 훼손할 수 있다. 법률 문서는 사실 전달과 법적 주장을 위해 명료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높임말은 문장이 전달하는 내용의 명료성을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감정과 관념을 게재시킨다.

변호사로서 최근 흥미롭게 관찰한 사실이 있는데, 법정에서 소송대리인인 변호사가 의뢰인을 지나치게 높이는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가 재판 중에 '원고께서는'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역시 어색하다. 변호사는 원고나 피고의 대리인으로서 법정 내에서는 원고나 피고 자신과 동일하다. 그런데 타자화해 굳이 높임 표현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어색하고 맞지 않는 언어 사용인가. 특히 서면에서 이런 표현이 사용되면 법률 문서의 형식성과 명료성에도 어긋난다. 그럼에도 상대를 존중한다는 마음이 법정에서도 법률 서면에서도 넘쳐 흐른다. 법정은 감정적인 존중을 드러내기보다 법적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할 자리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시대가 바뀌면서 상호 존중과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가 강화되었고, 높임말이 자연스럽게 보편화됐다.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기본적인 예의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존칭 사용이 필수적인 맥락이 아니더라도 무리하게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소통이 부자연스러워지고, 형식적 언어가 남발되면서 오히려 의사소통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존중과 예의를 표현하는 언어는 상황과 관계의 맥락을 고려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언어의 격식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지나쳐 의사소통을 방해하거나 본래의 목적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높임말이 남용되지 않고, 그 본래 의미를 충실히 담아내는 방향으로 언어사용이 자연스러워지기를 기대한다./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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