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진공의 힘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진공의 힘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4-10-17 17:29
  • 신문게재 2024-10-18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41017101930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물질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논의는 매우 흥미로워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에게 있어 중요한 주제가 되어왔다. 기원전 5세기경 그리스에서는 물질이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소설이 제기됐다. 당시 지금의 원자설과 유사하게 물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들로 구성된다는 고대 원자설도 있었지만, 4원소설에 밀렸다고 하니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 고대의 원자설은 돌턴(John Dalton)이 약 1800년대 원자설을 다시 제기할 때까지 거의 2000년 가까이 정론과는 거리가 먼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 와서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와 같이 매우 작은 소립자의 세계를 탐구하게 되면서 원자라는 것에 원자핵이 존재하고, 그 주변에 전자가 구름처럼 확률론적으로 퍼져있는 구조를 가짐을 밝혀냈다.

흥미로운 점은 원자핵과 전자가 퍼져있는 곳 사이에서는 비어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어있는 공간은 그 어떤 물질도 존재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진공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엄밀하게는 아니지만). 재미있게도 진공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논의됐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학자는 자연적으로 진공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공의 존재를 탐구했지만, 진공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공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문제의 시작에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1600년대에는 물 펌프로 우물이나 광산에 고인 물을 끌어올렸는데, 이상하게도 10m를 넘어서는 깊은 곳에서는 물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결국 당대 유명한 과학자였던 갈릴레오에게도 전달되었으며, 1644년 갈릴레오의 제자였던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진공을 확인한 실험이 이루어지게 된다.

토리첼리의 실험은 간단하다. 약 1m의 유리관을 수은으로 가득 채운 뒤, 손가락으로 열린 끝을 막는다. 이후 유리관을 뒤집어 수은이 담겨있는 그릇에 열린 끝을 집어넣은 뒤 손가락을 떼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관 속에 차 있는 수은의 무게에 의해 수은이 내려오는데, 이때 수은은 약 760mm에서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다. 이 실험을 통해 그는 유리관 안쪽에 수은이 내려가면서 만들어진 공간이 진공 상태가 된다고 추측했고, 수은의 높이 760mm는 대기압과 평형을 이루는 압력이 만들어지는 높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수은과 물의 밀도 차이가 약 14배가 나는데, 수은의 높이가 0.76m인 것을 고려하면 물을 10m 이상 끌어올릴 수 없는 것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실험은 최초로 진공을 증명한 사례였다. 현대의 우리는 이 실험을 기리며 압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토리첼리의 이름에서 딴 토르(Torr)를 사용하고, 1기압에 해당하는 압력을 수은의 높이에 해당하는 760토르로 정의하게 된다.

이후 1650년대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는 진공이 가진 어마어마한 힘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반구 형태로 만든 놋쇠 그릇 두 개를 붙인 뒤 본인이 발명한 진공펌프를 이용해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었다. 반구 형태의 놋쇠 그릇 두 개는 내부에 공기가 차 있으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양쪽을 당겨 쉽게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가 진공인 놋쇠 그릇을 서로 떼어내려고 하니 양쪽에 말 여덟 필씩을 묶어 당겨야 겨우 분리가 될 정도로 매우 강한 힘이 필요했다고 하니, 이를 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웠을지 상상이 되는가?

이후로 진공을 만드는 기술은 계속 발전해 현대에는 날개를 이용해 주기적으로 공기를 밀어내는 로터리 베인 펌프, 터보 펌프와 같은 기계적인 방식부터 모든 기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극저온 펌프, 기체를 이온화한 뒤 포집하는 이온 펌프와 같이 다양한 초고진공 기술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진공기술은 현대 기술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 점점 고도화되는 나노 반도체 소자를 제작하기 위해선 공정 과정에서 오염 요인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이때 바로 진공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교사노조, 교육감 후보들에 정책요구… 후보들 답변은?
  2. 손소리복지관 청각장애인·난청인 '소리 찾기' 지원사업 추진
  3. [교단만필] 아이들의 함성, 세상을 깨우는 박동
  4. 행복청, 2040 탄소중립 이끌 '전문가 자문단' 출범
  5. 굿네이버스 대전충북사업본부, 방글라데시 조혼예방 캠페인
  1. 세종시 조치원 A아파트 화재… 수습 국면 돌입
  2. “아이가 먼저 구명조끼부터 챙겨요”…대전교육청 생존수영 교육 '눈길'
  3. 충남대병원 제25대 원장 복수경 교수 임명
  4. [박헌오의 시조 풍경-14] 산동네 밭이랑
  5. 충남대병원 윤정아 교수, 2026 정기 학술대회 우수초록상 수상

헤드라인 뉴스


늘어나는 고령층 119 이송… 커지는 돌봄 공백

늘어나는 고령층 119 이송… 커지는 돌봄 공백

어버이날을 앞두고 가족 돌봄의 의미가 강조되는 가운데, 대전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층의 119 구급 이송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환자 증가와 1인 가구 확대, 가족 돌봄의 한계가 맞물리면서 홀로 위기 상황을 맞는 노년층에 대한 지역사회 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전소방본부에 따르면 2026년 2월부터 4월까지 65세 이상 구조·구급 병원 이송 건수는 모두 5278건으로, 2025년 같은 기간 4855건보다 423건 늘었다. 증가율은 8.7%다. 월별로도 증가 흐름이 뚜렷했다. 올해 2월 이송 건수는 164..

[유권자의 날] “공약 이해하기 쉽지 않아”…첫 선거 마주한 18세
[유권자의 날] “공약 이해하기 쉽지 않아”…첫 선거 마주한 18세

대전 반석고 3학년 황서연 양(18)은 이번 6·3 지방선거에서 생애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한다. 유권자가 된다는 사실은 설레지만, 막상 처음 마주한 지방선거는 기대보다 '어렵다'는 느낌낌이 먼저 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황서연 양은 "대통령선거나 총선은 뉴스나 SNS에서라도 자주 접하는데 지방선거는 후보도 많고 역할도 헷갈려 어렵게 느껴진다"며 "누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공약을 내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공약집을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투표 전에는 후보와 정책을 꼭 비교해볼 생각이라고..

“아이가 먼저 구명조끼부터 챙겨요”…대전교육청 생존수영 교육 `눈길`
“아이가 먼저 구명조끼부터 챙겨요”…대전교육청 생존수영 교육 '눈길'

학생들의 건강한 성장과 안전한 학교생활을 위한 체육교육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에 대전교육청은 학생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실천형 안전교육을 진행해왔다. 특히 학생들은 생존수영 교육을 통해 물에 적응하고 생존 뜨기와 구조 요청 방법, 구명조끼 활용 등 실제 위험 상황에 필요한 대응력을 체험 중심으로 배우며 스스로 지키는 힘을 키우고 있다. 체육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도 최근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 학교 유휴교실을 체육활동 공간으로 조성하는 '드림핏(Dream Fit)..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5차 석유 최고가격제 또 동결 5차 석유 최고가격제 또 동결

  • 유성온천 문화축제 준비 ‘이상무’ 유성온천 문화축제 준비 ‘이상무’

  • ‘공정선거 함께해요’ ‘공정선거 함께해요’

  • 시민 눈높이 설치 불법 현수막 ‘위험천만’ 시민 눈높이 설치 불법 현수막 ‘위험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