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
이 고대의 원자설은 돌턴(John Dalton)이 약 1800년대 원자설을 다시 제기할 때까지 거의 2000년 가까이 정론과는 거리가 먼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현대에 와서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와 같이 매우 작은 소립자의 세계를 탐구하게 되면서 원자라는 것에 원자핵이 존재하고, 그 주변에 전자가 구름처럼 확률론적으로 퍼져있는 구조를 가짐을 밝혀냈다.
흥미로운 점은 원자핵과 전자가 퍼져있는 곳 사이에서는 비어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어있는 공간은 그 어떤 물질도 존재하지 않아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진공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엄밀하게는 아니지만). 재미있게도 진공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논의됐으며,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학자는 자연적으로 진공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믿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공의 존재를 탐구했지만, 진공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공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문제의 시작에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간단히 소개하면, 1600년대에는 물 펌프로 우물이나 광산에 고인 물을 끌어올렸는데, 이상하게도 10m를 넘어서는 깊은 곳에서는 물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 문제는 결국 당대 유명한 과학자였던 갈릴레오에게도 전달되었으며, 1644년 갈릴레오의 제자였던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진공을 확인한 실험이 이루어지게 된다.
토리첼리의 실험은 간단하다. 약 1m의 유리관을 수은으로 가득 채운 뒤, 손가락으로 열린 끝을 막는다. 이후 유리관을 뒤집어 수은이 담겨있는 그릇에 열린 끝을 집어넣은 뒤 손가락을 떼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관 속에 차 있는 수은의 무게에 의해 수은이 내려오는데, 이때 수은은 약 760mm에서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다. 이 실험을 통해 그는 유리관 안쪽에 수은이 내려가면서 만들어진 공간이 진공 상태가 된다고 추측했고, 수은의 높이 760mm는 대기압과 평형을 이루는 압력이 만들어지는 높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수은과 물의 밀도 차이가 약 14배가 나는데, 수은의 높이가 0.76m인 것을 고려하면 물을 10m 이상 끌어올릴 수 없는 것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실험은 최초로 진공을 증명한 사례였다. 현대의 우리는 이 실험을 기리며 압력을 나타내는 단위로 토리첼리의 이름에서 딴 토르(Torr)를 사용하고, 1기압에 해당하는 압력을 수은의 높이에 해당하는 760토르로 정의하게 된다.
이후 1650년대 오토 폰 게리케(Otto von Guericke)는 진공이 가진 어마어마한 힘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반구 형태로 만든 놋쇠 그릇 두 개를 붙인 뒤 본인이 발명한 진공펌프를 이용해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었다. 반구 형태의 놋쇠 그릇 두 개는 내부에 공기가 차 있으면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양쪽을 당겨 쉽게 분리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가 진공인 놋쇠 그릇을 서로 떼어내려고 하니 양쪽에 말 여덟 필씩을 묶어 당겨야 겨우 분리가 될 정도로 매우 강한 힘이 필요했다고 하니, 이를 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웠을지 상상이 되는가?
이후로 진공을 만드는 기술은 계속 발전해 현대에는 날개를 이용해 주기적으로 공기를 밀어내는 로터리 베인 펌프, 터보 펌프와 같은 기계적인 방식부터 모든 기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극저온 펌프, 기체를 이온화한 뒤 포집하는 이온 펌프와 같이 다양한 초고진공 기술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진공기술은 현대 기술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 점점 고도화되는 나노 반도체 소자를 제작하기 위해선 공정 과정에서 오염 요인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데, 이때 바로 진공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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