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
불편할 수 있는 설정에도 흑백요리사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압권은 공정한 경쟁이다. 백수저든 흑수저든 계급장 떼고 오로지 실력(맛)으로만 승부했다. 심사위원은 안대로 눈을 가렸다. 미슐랭 스타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또 하나는 경쟁자에 대한 예의이다. 탈락자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생존자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출연자들의 대사는 어록이 되었다. "억울하면 저걸 뚫고 나갈 만큼 요리를 잘해야죠.", "덜어냄의 미학을 몰랐다는 걸 오늘 크게 깨달았어요."
최근에는 '한강 열풍'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이다. 개인과 문단을 넘어 한국 문화의 저력과 위상을 세계에 알린 경사가 아닐 수 없다. 반응도 뜨겁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당일 국회도 날 선 공방을 잠시 멈추고 함께 박수를 보냈다. 서점과 도서관에서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한강 작가가 들었던 노래, 과거 인터뷰 등이 재소환되고 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더 뜻깊은 이유는 한국 현대사의 상처와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누군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상처와 고통을 줄일 수 있다. 그 일을 마다하지 않은 작가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다. 한 노벨문학상 위원의 평가가 가슴에 와닿는다. "그의 부드럽고 분명한 산문은 잔혹한 권력에 맞서는 힘이 된다."
흑백요리사와 노벨문학상은 단순 비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교차하는 지점이 적지 않다. 요리와 문학 모두 인간과 시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흑백요리사와 노벨문학상을 통해 공감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독창성과 창의성도 빼놓을 수 없다. 흑백요리사의 생존자, 한강 작가 모두 기존의 관습과 형식에서 과감히 탈피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공통점은 흉흉하고 기괴한 이야기가 횡행하는 요즘, 오랜만에 큰 즐거움과 감동을 선물했다는 점이다.
아침저녁으로 가을바람이 선선하다. 수확의 계절이자 축제의 계절이다. 유성구는 구민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 구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 주말 한국지역도서전과 유성 독서대전을 개최했다. 한국지역도서전이 충청권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노벨문학상 발표에 맞춰 한강 작가 특별 부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18일에는 지역의 대표 가을축제인 유성국화축제의 화려한 시작을 알리는 유성국화음악회가 펼쳐진다. 11월 3일까지 유림공원에서 열리는 국화축제에서 깊어가는 가을의 진수를 맛보시기 바란다.
결산과 계획의 시기이기도 하다. 앞으로 유성구는 어떤 감동을 구민들에게 줄 것인가? 사업과 행사에서 어떤 차별성을 둘 것인가? 민선 8기 약속 실행에도 더 속도를 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흑백요리사에서 큰 감동을 줬던 에드워드 리 셰프의 말로 각오를 대신한다.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은 멀었어요. 가끔은 잠깐만 돌아가서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야 하죠.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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