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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보다는 사실(事實)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 한 번도, 그 어느 곳에서도 어떤 확신을 뒷받침한 적이 없었던 '사실' 말이다." 발터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서 이렇게 '확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인간은 사실보다 확신을 선호하는 본성에 대갈못을 박고, 그 이음새에 기름칠을 한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 잡힌 운전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사실). 이 사람은, 자기는 똑바로 가는데 다른 사람들이 거꾸로 가는 줄 알았다(확신)고 말했다. 역주행이 정말로 위험한 것은 거꾸로 가면서 바로 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역주행 가능성을 아예 상정하지도 않고, 질문하지 않는 것이다. 도리어 신지무의(信之無疑)에 차서 바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잘못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 결과 확신에 의해 사실이 비틀어져, 사실은 부정당하고 왜곡되고 심지어 창작되기도 한다.
자기 소신을 밀어 붙이는 사람은 질문하거나 반성하지 않는 사람이다. 신념이 만들어 제공한 '사실'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구태여 다른 '사실'을 찾을 이유도 없고, 자기가 잘못 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에 반성이라는 옵션도 없다. 다른 '사실'을 찾으려 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오히려 바로 가는 많은 사람을 비난하거나 잘못 가고 있다고 더 심하게 힐난(詰難)한다. 게다가 자기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당당하게 만들거나 눈치를 보거나 우물쭈물 하지 않고 "내가 세계의 중심이다"라며 자기 충족적 예언에 몰두하게 만든다. 자신감이 자만심을 흡수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은 자신감의 결여, 비굴함으로 치부되므로 해롭다고 여긴다. 그러니까 옳지 않은 일이기에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일종의 '처세의 갑옷'을 입고 자기 효용의 동굴에 갇히게 된다. 오직 맹목의 확신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여기'에서 갖고 있는 신념이 어느 때 내 지식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성찰의 공부와 점검의 노력이 부족했던 때일 수도 있고, 여건과 환경이 다르기에 이견(controversy)이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소홀히 했던 때일 수도 있다는 인정이다. 즉, "확신에 대한 오류의 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상정하여 선험 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의심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하여, 단풍과 낙엽의 이 가을에, 내 삶이 잘못 가고 있는지 의심할 여유를 찾고, 오직 확신에 사로잡혀 자신의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던 마음의 밭에 한 그루의 생각나무를 심는 일은 소중한 사유 작업이다.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일에서부터 나와는 무관한 듯하지만 필연적 관계의 끈을 내장하고 있는 일에 '마음 밭(思)'이란 렌즈를 통해 다시 들여다보자(re-spect). 그것이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respect)하는 '지금 마음(念)'을 사는 소중한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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