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
한밭 벌에 철길이 놓이고 철길을 따라 모여든 사람들에 의해 대전의 근대가 열렸다. 대전은 철도로 인해 성장한 도시이지만 한국전쟁 때는 철도로 인해 도시가 폐허가 되기도 했다. 유년 시절 부친과 완행열차를 기다리며 플랫 홈에서 가락국수를 먹었던 추억과 서울 유학 시절 무거운 짐 보따리를 들고 통일호 기차를 기다렸던 곳도 대전역 플랫 홈이었다. 까까머리로 군대에 징집되어 군용열차를 타고 훈련소로 입영한 곳도, 일제 강점기 부친께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관동군으로 끌려갔다가 광복 후에 간신히 살아 고향으로 돌아오신 곳도 이곳 대전역이었다. 오랫동안 객지 생활에서 돌아와 대전역에 도착하면 넓은 대전역 광장은 아늑한 어머니의 품과 같이 안아주었다.
지난 팔월 초 대전의 지역학 연구모임 단체인 '대전연구회'에서는 열차를 타고 몽골과 러시아 바이칼 지역을 답사한 적이 있었다. 이번 답사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몽골 종단 철도의 일부를 이용하였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러시아 철도가 운영하는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 역에서부터 블라디보스토크의 블라디보스토크역 구간을 연결하고 있는 세계 최장의 철도이다. 몽골 종단 철도는 러시아의 울란우데에서 조금 떨어진 자우딘스키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 본선에서 분기해 몽골을 남북으로 종단하여 중국의 베이징시까지 연결된다. 이번 답사에서는 바이칼 호수와 몽골초원을 가로지르며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을 둘러보았고, 끝없이 펼쳐진 몽골의 초원과 언덕을 만끽하며 그들의 삶과 정신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특별한 답사였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베를린 올림픽 육상 마라톤의 손기정, 남승룡 선수나 일제 치하에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가들이 탔었던 철도이다. 또한 연해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집단이주 되었던 절망의 철도이기도 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과거 냉전 시대에 단절의 땅이었다. 이 철도는 러시아를 통하여 드넓은 유럽으로 나가는 대륙으로 가는 길이다. 고대 실크로드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단순한 무역의 길이 아닌 사람들의 교류를 통해 문명과 문화의 교류를 가져왔듯 철의 실크로드라 불리는 동아시아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몽골 종단 철도는 문화와 문명을 실어 나르고 세계 평화를 만드는 미래의 실크로드라 할 수 있다. 대전역 플랫 홈에서 대륙을 향한 기차를 타고 광활한 몽골초원과 바이칼과 시베리아를 거쳐 파리, 런던까지 여행할 미래의 실크로드 역으로 대전역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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