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문예지 '너머'와 정부의 문화예술지원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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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문예지 '너머'와 정부의 문화예술지원 문제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4-10-06 16:48
  • 신문게재 2024-10-07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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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권 교수
문예 계간지 '너머'가 웹진 형태로 발간되고 있다. 2022년 11월 창간되어 현재 8호까지 발간되었는데, 다른 문예지와는 변별되는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너머'는 무엇보다도 수록 대상을 국외의 한인 디아스포라 문학 작품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다. 그동안 국외의 한인 문학을 소개하는 문예지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일회적으로 혹은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그쳤다. 너머가 국외 한인 문학을 수용하면서 한국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그런데, 너머가 앞으로도 계속 발간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소문에 의하면, 내년도 발간을 위한 예산이 아직 불확정적이라고 한다. 너머는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발간되는 문예지이기 때문에 국가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너머의 발간을 위해서는 편집비, 운영비, 웹진 시스템의 유지비, 원고료 등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판매나 광고가 전혀 없고 전 세계 누구나 무료로 구독하는 웹진이므로 수익 창출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너머의 발간은 문화예술을 위한 정부의 지원 목적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지만, 국가의 지원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려운 분야에 해당한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인 작품을 모아서 문예지를 발간하는 일은 사적인 영역이나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공공의 영역에 속한다. 하여 국가에서 그 명맥이 계속 유지, 발전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분야이다. 너머는 정부의 문예진흥기금마저 받을 수 없는 국외 한인 작가들을 위한 발표의 장이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미국의 L.A. 한국문화원에서 들었던 어느 한인 작가의 말을 떠올려 본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했던 '미주지역 한글 문예지 편집인대회'에 참가했던 어느 한인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나이 70이 넘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외국에 나와서 한글 문학 한다고 국가에서 이렇게 초대해서 격려해 주니 눈물이 나요." 국내에서 명문여대를 졸업하고 1980년대 초에 전문가 이민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정착한 어느 노시인의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을 한 한인 작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웹진 너머의 발간은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원이다.



비단 너머의 문제만이 아니다. 올해에 대폭 축소되었던 문화예술 지원을 위한 정부 예산이 내년에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하여 문화체육부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가 열악하다 못해 참담한 수준이다. 들리는 말로는 문화예술계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못해서 관련 예산을 아예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사실이 아니길 소망해 본다. 바라건대, 보수 정부든 진보 정부든 자신들의 정치 편향으로 문화예술 지원 문제에 접근하지 않기를 바란다. 문학의 지나친 정치화는 문학에도 정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자본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러나 정작 인간에게 소중한 것들, 가령 사랑, 진실, 정의 등은 자본시장과 무관한 것들이다. 궁극적으로 이들을 추구하는 문화예술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인간다운 사회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재정 지원이 필요한 문화예술 분야를 외면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이다. 문화예술의 다양성이 결핍된 인간 사회는 동물의 집단이나 기계들의 군집과 다르지 않다. 정부가 너머와 같이 주류 사회의 변방에서, 화려한 현실 사회의 그늘에서 묵묵히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는 이들을 위해 더 과감하게 지원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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