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딸과 함께하는 첫 여행을 일본으로 정한 것이 내키지는 않으나, 삿포로는 제가 재직 시 대전과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로, 몇 차례 양 도시의 시민들이 상대 도시를 교차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몇 차례 삿포로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을 선택한 것은 단순히 오래전의 공무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겨울 눈 축제를 참관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가을을 보고 싶었습니다. 특히 이번 여행은 딸과 함께하는 특별함이 있네요.
작년에 아침단상에서 '가을 마중'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서 지인들과 갈대밭을 다녀오면서 차 안에서 들었던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다시 가을 여행을 떠나는 분들에게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들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즐거운 여행길에 슬픔으로 만들어진 노래를 권고하는 것은 상황에 맞지 않지만, 이는 슈베르트의 말에서 영향을 받아서입니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많은 실내악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불멸의 위치에 있는 것이 바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입니다. 지금은 없어진 악기지만 '아르페지오'라는 악기는 기타와 비슷한 몸통을 가졌고 첼로처럼 다리 사이에 안고 활로 켜는 악기입니다. 이렇게 짧은 수명을 가졌던 악기를 위해 슈베르트는 최고의 명곡을 남겼습니다. 이 한 곡으로 아르페지오는 없어졌지만 그 악기 이름은 영원히 남게 된 것이지요.
이 곡을 쓸 때, 슈베르트는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비참하고 괴로운 일상을 잊기 위해서 슈베르트는 저녁마다 홍등가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는 거기서 자신을 학대하면서 술과 여자에게 몸을 내던졌고, 집에 돌아와 눈물이 범벅된 상태로 피아노조차 없는 자기 방의 작은 책상에 앉아 머리로 떠오르는 선율을 오선지에 그려 넣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에 쓰인 것이 바로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습니다. (박종호,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174~5쪽 참조)
제가 즐거운 여행을 가거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 슬픈 노래를 추천하는 것은 슈베르트가 남긴 말 때문인데, 슈베르트는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을 표현한 것입니다.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생각합니다. 슬픔은 이해를 돕고, 정신을 강하게 합니다." (박종호, 위 책 177쪽)
슬픔과 기쁨은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기쁨 속에 항상 슬픔이 숨어있고, 슈베르트의 말대로 슬픔은 우리의 정신을 강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행의 즐거움을 슬픔의 역설(paradox)에서 찾는 것은 그야말로 역설 중의 역설이지요. 이렇게 보니까 우리는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인간이 추구하고 발견한 진리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이 없고, 상대적이고 모순적이며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이런 뜻에서 슈베르트의 '슬픔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세계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라는 역설을 가을 여행을 즐기는 자동차 안에서도 재연하시도록 권고합니다. 특히 여행에 가시는 길보다는 돌아오시는 차 속에서 더 잘 어울릴 듯하네요.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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