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
2022년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병원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74.8%로, 가정에서 사망하는 비율은 16.1%에 불과하다. 병원이 사망 장소로 이용되는 비율은 OECD 평균 49%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며, 한국은 36개 국가 중 가장 높다. 미국은 36%, 영국은 40%, 네덜란드는 23%,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비율을 보인다.
1991년, 박완서의 소설이 출간될 당시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 장소는 가정이 74.8%, 병원이 15.3%였다. 이는 현재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우리의 일상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의료화됐다. 의학 지식이 증가하면서 일상생활이 질병으로 규정되고 의학적 관리의 대상으로 확장되는 현상을 '일상생활의 의료화'라고 한다. 출산에서부터 노화, 죽음까지 의학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으며, 대머리, 비만, 저신장, 과잉행동, 갱년기 등도 모두 의료적 치료 범주에 포함된다. 이 경향은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태아의 유전자 검사까지 확장됐다. 시험관 아기 시술을 받는 여성들은 착상 전 배아 단계에서 유전 질환이나 염색체 이상 여부를 진단한 후 정상 배아만을 이식하는 착상 전 유전진단(PGT)을 의사의 권유로 활용하고 있다.
일상생활의 의료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의사의 조언을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의료 문제에서 사람들은 의료 전문직의 지배와 통제에 놓이게 되고, 의료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전문직의 요구와 의견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이로 인해 의료 시스템은 의사 중심, 치료 중심으로 구조화된다. 이러한 '규제 포획' 현상은 정부가 의료 전문직을 통제하고 제한하기보다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의료 대란은 정부와 의사 간의 틈이 벌어지면서 비롯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의대 정원 확대가 포함된 필수의료 패키지 발표를 시작으로, 공공정책 수가 신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의료 인력 수급 추계기구 설치 등의 후속 조치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시장과 법치주의를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는 지역마다 고유한 의료 요구가 있으며, 정부는 외부인으로서 이러한 요구에 대응할 능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다원적인 선택을 존중하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분권화와 다원화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현재 의정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책 당국에게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며, 시민 의견을 수렴할 여건도 부족하다.
올해 초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대다수 국민이 찬성했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 여부를 재논의하자는 의견이 거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즉,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상황이다.
박완서의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맺는다. "오직 틈바구니만이 예외다. 내가 생전 틈바구니에 끼여보지 않았다는 게 무슨 뜻일까? 서로 목청을 높여 싸우는 걸 봐도 전처럼 선뜻 어느 쪽이 옳거니 양자택일이 안되고, 또 그놈의 틈바구니에 사로잡히게 된다. 여봐란듯이 틈바구니에 끼기 위해선 거친 두 목청 사이에 낀 틈바구니의 숨결을 찾아내야만 할 것 같다. 그가 남긴 모자가 나에겐 모자라는 물질 이상이듯이 틈바구니란 말 또한 말뜻 이상의 것, 한없이 추구해야 할 화두임을 면할 수가 없다." 틈바구니에 서 있는 우리는 무엇이 진정으로 필요할까? /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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