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구조적 ‘모순’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거기서 끓어올라 분출하는 시대적 분노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해방 후 한국인의 분노는 가난이었다. 이 분노를 다스렸던 것이 박정희 정권에 의한 산업화과정이었다. 산업화 이후에 싹트기 시작한 분노는 권위주의적 독재였고, 이 분노를 벗어던진 것이 1980년대 민주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먹고 살 만큼 소득수준도 올라갔고 민주화는 그 열망의 단계에서 훌쩍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국민의 뜻에 의해 무엇이든 이뤄질 수 있는 의식구조와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분노는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렵거나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한 경우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여기에는 ‘아무리 정직하게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라는 한국인의 머릿속에 각인된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한 몫 한다. 노력해봐야 소용없다는 굴절된 현실은 사람들을 경쟁적인 ‘지대추구 행위’로 몰아간다. ‘지대추구행위’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로비 등 비생산적 활동을 펼침으로써 공공의 자원을 낭비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다시 간단히 말해 자기 이익을 위해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혈연, 지연, 학연 등 연줄과 배경에 따라 성공하고, 실패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돌보기에 앞서 불공정한 사회와 비겁한 경쟁자를 탓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흔히 분노는 ‘감정적 분노’와 ‘이성적 분노’로 구분된다. ‘감정적 분노’는 참고 다스리라고 하지만, ‘이성적 분노’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그 내용을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그 해법을 제시해줘야 할 것이다. 그래야 무질서한 분노의 분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 있는 분노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 제시! 지금 누가 할 수 있는가. 낙오자도 인정할 수 없는 경쟁.패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승부! 실패자도 수긍하며 한 번 더 기회를 보장해 주는 사회! 그러한 쟁점들의 나침판 역할은 누가 할 것인가?
균형이 무너지면 시행착오가 되고, 시행착오가 되면 분노의 미로를 탈출하지 못할 것일진대! 이러한 탈출구는 언제 올 수 있을까? 빈부격차의 심화와 금융기관 비위에 분노한 시민들! 납세자들의 희생과 국민의 돈으로 은행을 구제해야 하는 사회적 분노! 이런 일에 우리는 지금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뉴스 채널을 보면 온통 물가상승, 주택문제, 세금, 생활 여건, 교육비, 생활비, 학원비, 주유비, 금융 고금리, 의료비, 통신비 등 어느 한 곳이 편한 곳이 없다. 어떠한 곳에서도 ‘저비용, 고효율’이 없고, 모두 ‘고비용, 저효율’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부자나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거나, 분에 넘치는 과잉복지는 대다수 국민을 도탄에 빠뜨릴 염려가 있다. 그것은 선진국 사례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정한 게임과 양극화로부터의 협치가 있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되, 패자에 대한 배려를 제도화함으로써 사회정의와 효율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역량을 모아 양극화를 완화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뤄낼 환경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분명히 분노하고 있다. 그 어떤 곳에서도 미래와 희망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우울한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분노의 한복판에 서서 TV 뉴스 채널을 다른 채널로 바꾸어 가며, 위로받기 위해서 트로트나 건강 채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다.
분명 위험한 상황이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분노는 그 자체로 꿈틀대는 에너지다. 그러한 에너지를 희망의 지렛대로 삼을지,패망의 도화선으로 삼을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 어떠한 곳도 미래에 희망을 주는 곳이 없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노하며 우울한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가?
김기복(대한옴부즈맨 총연맹 충청권 대표.(사)온누리청소년문화재단 이사장.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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