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명절 추억을 잃어가는 가족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명절 추억을 잃어가는 가족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4-09-23 14:26
  • 신문게재 2024-09-24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한가위 황금연휴가 지나갔다. 추석 풍경은 올해 더운 날씨만큼이나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가족이란 그리움이 있는 고향으로 향하던 행렬은 기세가 꺾였다. 차례상을 직접 만들기보다는 음식을 사서 준비하는 가정이 늘어나며 '혼추족'을 위한 한 끼 명절 음식도 나왔다. 명절 연휴는 가족이 모여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어 조상께 차례를 올리는 날이기보다는 긴 휴식일과 같다. 이 기간에 공항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사람은 해마다 늘어난다. 공동체의 근본인 가족의 가치가 흔들리는 듯하다.

막막한 우주에서 두 개의 우주 비행선이 접선하는 사건을 랑데부라 한다. 동일 궤도에서 마주해 도킹에 성공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 마찬가지로 엄마의 자궁에서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세상에 울음을 터트리기까지도 그럴 것이다. 어느 날 태어나고 자각하니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가족 관계망에 편입된다. 최초에서 내려오는 무수한 인연 중 우연히 한 사건이라도 생겨 삐끗했다면 필연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이란 인연은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인생의 최대 신비다. 우연인 듯 필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지난 시절은 대가족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소가족이 되었고 핵가족으로 변해간다. 이제는 애당초 1인 가족, 무자녀 가족까지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는 여성이 정자를 사서 임신해 아빠 없는 가족이 형성되는 일도, 반려 가족도 생겼다. 머지않아 휴머노이드와의 가족관계도 도래할 전망이다. 가족 관계망은 비혼이나 저출산 등으로 성글어져 간다.

호모 사피엔스는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키워져 문명을 꽃피웠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되어 있다. 챗GPT한테 미래사회의 가족의 역할에 관해 물어보니 '미래에는 여러 형태의 가족이 공존하게 된다.'라고 답한다.



지난 시절 가족들은 좁은 집에서, 동네에서 얽히고설키며 정이 들었다. 분가 후 뿔뿔이 흩어져 몇 년에 가끔 보아도 거리감이 없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다르다. 방계가족은 처음부터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어쩌다 결혼과 같은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만 겨우 보니 거의 남 같은 수준이다. 우리 집안만 해도 형제에서 뻗어 나간 사촌끼리 전화하거나 만나지 않고 있다. 가까운 사이니 가끔 전화해 안부를 묻고 만나보라고 일러주어도 갈길 바쁜 그들은 건성으로 듣는다. SNS에서도 연결되지 않는 관계에서 무슨 가족애가 있겠는가.

오늘날 MZ세대의 가족 개념에는 나이 든 부모가 있을 자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들은 동거하지 않는 부모를 자기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일방적 관계로 여긴다. 대신 반려견이 가족 자리를 꿰찬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돈다. 가족이 있어야 명절에 화기애애한 웃음꽃이 피어난다. 옛날 부모들은 온 가족이 모여 손주들과 함께 밥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였다. 가족이란 구심력이 약해지니 명절에 갈 곳 잃은 사람들로 소문난 식당과 커피숍은 북새통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가족공동체가 변화의 용틀임을 하고 있다. '개모차'가 유모차보다 더 많이 팔리는 세상이다. 지금처럼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아기를 낳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고 저출산이 지속되는 쪽으로 질주한다면 가족의 범위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끝내 이모 고모 삼촌과 같은 이름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 사는 재미는 사람 속에 있다. 한가위 보름달은 그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둥글기만 하였다. 오래전 고향에 내려가 추석 차례를 지낸 후 어머니가 잔뜩 챙겨준 먹을거리를 차에 싣고 저녁에 덕유산을 넘고 있었다. 산 너머로 둥실 떠 있는 보름달은 그렇게 크고 붉고 환할 수가 없었다. 그 광경은 자식들이 분가한 지금도 가족이란 기억으로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 차례상을 준비하는 정(情)이 사라진다면 추억을 잃은 가족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김태열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국정감사 자료요구로 '직급별 노조 가입 현황'을? 과기연구노조 "도 넘어… 성실 국감 매진해야"
  2. 가을 준비 마친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3. 대전특수영상영화제 성료… 특수영상 거점도시 매력에 빠지다
  4. 대전권 2025 수시 경쟁률 상승요인 "고3 수험생 일시적 증가"… 충남대 최저학력 완화 효과도
  5. 가을 폭우가 할퀴고 간 자리
  1. 충청권광역철도사업 지연 '언제까지'
  2. 한한령으로 싸늘했던 중국내 한류, 한국학 연구로 살아나나
  3. 대전시, 쌀 소비 촉진 활성화 나서
  4. 전국 장어 낚시 동호회 '忍(인)파이터' 대청호 일대 환경정화
  5. 대전 대덕구, 집중호우 피해지역 점검 및 복구 나서

헤드라인 뉴스


경비원 휴게실 의무화에도… “환경 열악해 있어도 못 써”

경비원 휴게실 의무화에도… “환경 열악해 있어도 못 써”

"아파트 단지마다 경비원이 쉬는 걸 반가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19일 저녁,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만난 경비원 A씨는 1평 남짓한 경비 초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경비원은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저녁에 퇴근하지 못하고, 24시간 격일 교대 근무를 한다. 야간 휴게 시간에도 A씨는 비좁은 초소에서 간이침대를 펴고 쪽잠을 청한다. 아파트 단지 지하 자재창고 내 경비원 휴게실이 있으나, 창고 문이 굳게 잠겨있기 때문이다. 자재창고 열쇠도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있어 휴게실을 이용할 때마다 소장에게 직접 열쇠를 달라고 요청해야..

농번기·행락철만 되면 5배 늘어난 농기계 교통사망사고
농번기·행락철만 되면 5배 늘어난 농기계 교통사망사고

#1. 이번 달 18일 충남 홍성 갈산면 상촌리 갈산터널 안에서 오전 7시께 경운기와 승용차 추돌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농번기 시즌이면서 연휴 기간이 겹치면서 평소보다 교통량이 크게 늘어나 터널 내 편도 2차로에서 앞서가던 경운기와 뒤따라오던 승용차의 속도 차이로 인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60대 경운기 운전자는 사망하고, 승용차 운전자도 크게 다쳤다. #2. 올 8월 충남 예산의 한 농지에서 경운기를 몰던 70대 남성이 수로에 빠지면서 사망했다. 농산물 수확을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제때 핸들을 틀지 못해 경운기가 넘어져..

대전특수영상영화제 성료… 특수영상 거점도시 매력에 빠지다
대전특수영상영화제 성료… 특수영상 거점도시 매력에 빠지다

국내 유일의 특수영상 콘텐츠 시상식인 2024 대전특수영상영화제가 20일부터 22일까지 대전 카이스트와 원도심 일원에서 진행됐다.대전시와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주최·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했다. 이번 영화제는 특수영상 기술 공동심포지움을 시작으로 영화 OST 커버 공연, 대전 오버더탑 어워즈(Daejeon Over-The-Top Awards), 관객과 영화 제작자들이 함께하는 GV 토크쇼가 진행되며 국내 특수영상 콘텐츠 제작자들과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화제의 메인 행사인 대전 오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을 폭우가 할퀴고 간 자리 가을 폭우가 할퀴고 간 자리

  • 가을 준비 마친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가을 준비 마친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 집중호우에 잠긴 대전 유등천과 갑천 집중호우에 잠긴 대전 유등천과 갑천

  • 베이스볼드림파크 공정율 64프로…‘내년에 만나요’ 베이스볼드림파크 공정율 64프로…‘내년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