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되고 있는 서산 향교 건물 내부 사진 |
방치되고 있는 서산 향교 건물 내부 모습 |
방치되고 있는 서산 향교 건물 내부 사진 |
방치되고 있는 서산 향교 건물 내부 모습 |
방치되고 있는 서산 향교 건물 내부 모습 |
방치되고 있는 서산 향교 건물 내부 모습 |
618년 전에 지어진 서산향교(충청남도 지정문화재(기념물) 제 116호)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거의 방치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산향교는 서산시의 주요 관광지로 SNS 등을 통해 홍보되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지만, 최근 관리 부실로 인해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끊어져 있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어 건물 부식 등으로 갈수록 훼손이 심해지고 있다.
인근 주민들은 "사람의 인적이 없이 1년 내내 거의 문이 닫혀 있는 마을과 동떨어진 외진 공간으로 전락하고 있으며, 다소 음침한 기운마저 느끼게 한다"며 "역사 문화적인 측면을 고려해 제대로 관리해 선현들의 삶을 공감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향교는 예로부터 지역과 마을의 교육 및 문화의 중심으로서 정신적, 정서적인 기둥 역할을 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전혀 관리가 안된 채 주변과 차단된 채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에 몇몇 지역인사가 이준호(전 서산문화원장) 전교 중심으로 서산향교를 재건하고자 뜻을 모으고, 유림회 및 장의회를 재결성해 성균관의 재가를 얻고 유림들을 모집했다.
이준호 전교는 " 옛 선조들의 생활 문화의 중심이었던 서산향교의 역사적 가치화 문화적 역할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서산시와 충남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서산향교는 태종 6년(1406년)에 조종생이 서산에 지군사로 부임해 지방 유지들의 뜻을 모아 서산 관아 서문밖에 향교를 창건돼 160여 년이 지난 선조 7년(1574년) 현재의 위치에 옮기고 1648년(인조 26년) 서문 밖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669년(현종 10년) 재차 대성전의 중수가 이뤄졌으며, 1872년 (고종 9년)에는 흥선대원군의 흥학과 향교 운영 쇄신 정책에 의해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1970년대에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를 해왔다.
향교 안에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이 있으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각지붕으로 꾸며져 있고,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유학자 7명과 우리나라 선현 18명 등 25명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건축 형태는 전면에 명륜당을, 후면에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의 형태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다. 배우는 공간인 명륜당은 앞면 8칸, 옆면 2칸 규모로 되어 있으며, 명륜당 앞마당에는 조선 정종 때 심었다는 500여 년 정도 된 은행나무(2008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가 있다.
서산향교가 특이한 점은 전국의 향교 대성전 대부분의 건물이 맞배 지붕 건물인데 비해 서산향교 대성전은 팔짝 지붕 건물로 향교 건물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건물이다.
서산향교는 1997년 12월 23일 충남도의 지정문화재(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됐으며, 전적 판본 15종 8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서산군 신학기, 문묘 중수기 등과 같은 일제 강점기 이전의 현판류 18종 등이 남아 있고, 대성전 계단 아래 오른쪽으로는 1966년에 세운 서산향교 중수교토조성공적비가 남아 있다.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서산향교에는 전적으로는 판본 15종 80책이 있다.
서산=임붕순 기자 ibs990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