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그리고 알리바바 등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손쉬운 온라인 쇼핑과 빠른 배송을 해주고 있고, 구글은 신속한 정보 검색과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페이스북은 사회적 연결과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통해 SNS를 용이하게 해줍니다. 알리바바는 글로벌 쇼핑과 사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편리성을 제공받고 있는데, 그러나 이에 따른 부담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 빅테크 기업은 우리가 무엇을 보고, 읽고, 구입하는지, 누구를 어디서 만나는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정체성의 일면을 훔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재무장관이자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아리스 바로파키스는 "빅테크는 그들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봉건제의 영지를 꾸리고,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를 자발적 데이터 농노로 만들어 새로운 봉건주의 시대의 영주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련의 변동을 바로파키스는 '테크노퓨달리즘'이라는 저서를 통해 세상에 밝히고 있습니다. 테크노퓨달리즘은 테크(Tech)와 봉건제도(Fudalism)를 합친 조어인데, 이 책은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를 죽이고 개인을 무임금으로 노동하는 데이터 노예로 전락 시켜버린 빅테크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현대의 IT기술은 클라우드와 알고리즘을 통해 모든 사람을 농노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충격적이고 우리를 우울하게까지 만듭니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성과라고 생각했던 클라우드 자본은 일종의 변종 자본으로 마치 너무나 힘센 바이러스가 숙주를 죽여 함께 멸망하듯이 그 자본이 자본주의를 죽여 훨씬 더 나쁜 테크노퓨달리즘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는 이미 죽었으며, 현시대를 민주주의나 강력한 조직 노동 등이 무력화된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주희, 최배근 교수들의 '테크노퓨달리즘' 감수.추천글 참조)
테크노퓨달리즘 아래에선 우리는 자신의 정신조차 소유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클라우드 자본을 공유해야 한다든지, 민영화와 사모 펀드가 자산 벗겨먹기로 우리의 부를 집어삼킨다는 주장은 치밀한 이론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구심이 남습니다. 특히 전 세계 클라우드 농도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호소한다는 주장은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테크노퓨달리즘은 전통적인 봉건 사회와 유사하게 권력과 자원이 빅테크 기업에 집중되고 이들 권력에 의존하게 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대응이 필요합니다. 사회적으로는 정보 접근과 기술 활용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는 빅테크 기업이 시장의 규칙을 지배하고 일반 대중의 경제적 기회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으로는 기술 기업들이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거나 직접적으로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민주적 절차와 거버넌스를 약화시키고 기술 엘리트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편향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와 우려를 떨치기 어렵습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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