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혐오를 넘어 존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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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 혐오를 넘어 존중으로

서산동문초등학교 교사 김재운

  • 승인 2024-09-19 12:48
  • 신문게재 2024-09-20 18면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서산동문초 교사 김재운
김재운 교사
지금 우리 사회는 혐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유튜브,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매일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대량 혐오 콘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우리 아이들은 병들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이러한 모습들이 저학년 학생들에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에서 어른들조차 입에 담기 힘든 단어들을 내뱉을 때면 이토록 역설적이지 않을 수 없다.

혐오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매우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문제는 표현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감정 표현이 미숙한 우리 학생들은 어른들이 만든 혐오 표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학교뿐만 아니라 집, 온라인 등 그들의 시선이 머무르는 모든 곳에서 말이다. 어린 학생들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래 문화, 세대 차이라는 명목하에 방관하거나 용인해버린다.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 속 어디에도 '올바른 혐오 표현 방법'과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명시돼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내용은 가정에서는 부모와의 상호작용,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요즈음 학생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취약한 걸까?

무분별한 미디어 노출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되지만, 사실 그 이전에는 어른들의 간섭과 통제 속에서 성장한 배경이 한몫한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받아야 하지만 어른들이 이런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성장함과 동시에 감정과 욕구 또한 더욱 다양해지고 커지는데, 그 중 부정적인 감정들을 조절하거나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경험이 현저히 적으니 그 감정들이 안에서 곪아 터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학생들이 혐오와 같은 감정을 스스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강한 상호작용을 통한 감정 표현 연습이 필요하다. 감정 표현 연습의 장은 가정과 학교이고,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그 반경은 점점 넓혀진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수도 있고 때로는 잘못된 부분에 대해 따끔한 비판도 받아야만 할 것이다. 경험치가 쌓일수록 감정 조절 능력은 향상될 것이며 그와 동시에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표현 연습만 꾸준하게 하면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감정 표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BTS가 2017년 9월에 발매한 앨범의 제목은 'Love Yourself'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밑거름돼 타인에 대한 존중의 싹이 튼다. 존중을 담은 감정 표현만이 부정적인 감정을 자연스럽게 흘려 내보낼 수 있다.

요즈음 교실 속 학생들은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친구에게 '분조장', '분노조절장애'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단지 내 안에 끓어오르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것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빠져버린 말과 행동이 매개체가 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시킨다. 이로 인해 친구 관계가 틀어지고, 더욱 심각해져 학교폭력과 같은 큰 상처를 주고받는다. 혐오를 풀어내는 완벽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말과 행동에 타인에 대한 존중을 담을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대혐오의 시대를 잘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산동문초 김재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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