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
꿋꿋이 연극인의 길을 걷겠다는 개막 연단의 목소리들을 모아보니, 정작 먹고사는 값어치를 정신적 가치로, 승리로 둔갑시켜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2004년 고마나루전통축제로 시작하여, 2005년 고마나루전국향토연극제, 2020년 고마나루연극제, 2022년부터 고마나루국제연극제 등으로 축제 이름이 바뀌었던 역사도 어렴풋 기억이 난다. 그때마다 수도권 중심의 기성 연극을 탈피하고 지역 연극의 고유성을 반영한 지역문화 운동 확산을 위해 노력해보자라든지, 글로컬리즘을 앞세워 세계중심의 연극축제로 거듭나보자, 또 지역공연예술축제 네트워크를 구축해 권역별 예술제 벨트를 도모해보자면서 그렇게 수없이 지역 문화정책과 연동돼 밤새 숙의했던 시간도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러자니 내가 무슨 스무 해를 버텨온 것도 아닌데 이 서럽기까지 한 감정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일주일 새, 연극영상을 수십 편은 본 것 같다. 그 가운데 몇 편은 '제3회 보편적이지만은 않은 극적무대'(24.6.6.~8.11.)라는 중견연출가들이 모인 연극제 작품이었는데, 극단 이야기가의<후성이네>(최재성 작·연출/7.31.~7.28./극장 봄)에 "빈 것이 있으면 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치울 생각부터 한다."라는 대사가 있다. 어둑어둑한 무대에 종말을 앞둔 이의 목소리의 깊이가 남다르다. 언제 우리가 스스로 채우거나, 치웠던 몫을 가져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뒤늦게 채워지거나 치워지거나 피동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필요에 쓰임에 위태롭게 숨 쉬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든다. 딸아이는 만날 애달픈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내가 측은했는지 자꾸 내 방을 기웃댄다. 그러곤 "아빤 왜 이렇게 가난해?"라고 가감 없이 한마디 뱉고 나간다. 순간 숨이 막혀, 퍼즈키를 누른다. '가난해'의 문장부호가 물음표인지, 느낌표인지 마침표인지 모를 일이다. 난 녀석에게 되묻지 않았다. '가난'에 대한 감정보다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았다. 예술을 한다는 것. 아니 그걸 바라본다는 것.
어머니 생신 전날, 미역국 끓이러 갈까 물었더니, 누이가 벌써 미역국을 끓여서 먹고 있다고. 내게 자기 걱정을 말라는데 웃음이 절로 샌다. 아무도 없을 땐 아들밖에 없다며 '나'부터 찾더니, 나 대신할 게 생기자마자 걱정을 말라고 해서다. 결국 외롭고 고독함의 실존을 느낄 때서야 '찾을 사람'을 찾는다. 마침 계절강의 강의료가 들어와서 숨통이 트였다. 연체된 각종 공과금, 카드값, 대출이자를 갚고 나니 자꾸 뒷자리들이 사라진다. 그래도 당신 생일이니 오후엔 오래간만에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드릴까 싶었는데,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신을 것도 마다하니 겨우 남은 기십 만원을 봉투에 넣는다. 모처럼 용두동의 좁은 거실이 꽉 찬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이렇게 다 모여서 처음 촛불을 분다. 이제 당신도 곧 여든인데, 어쩐지 내 자리가 위태위태하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려나. 저-쪽- 풍향을 알 수 없이 밀려온 바람이 내 센 머리를 밀어 올린다. 들고 있던 시집 한 구절을 꾸욱-꾹 눌러, "다쳐도 좋을 마음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정덕재, 정류장에 두고 온 뉴욕치즈케이크, 월간토마토, 2024)라고 쓰면서 뒷장에 음각 자국을 남긴다. 조훈성 연극평론가·충남시민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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