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경혜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9월 6일 철도보급창에서 진행된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위경혜 교수는 대전은 후방 군사도시로 군인을 위한 영화관이 따로 운영되고, 도시재건 문화활동에 영화관이 활용됐다고 분석했다. 대전에 처음 영화관이 마련된 때는 1917년으로 대전좌와 천만좌라는 극장이 개장했으며, 1911년 대전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물리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 계기였다.
위 교수에 따르면, 1919년 논산에 강경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1928년 논산 강경극장 개관을 가져왔고,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뒤 1933년 대전에 경심관, 1943년 광산업의 일본인이 대전극장을 열었다. 충청권에서 처음으로 1900년 공주 금강관으로 영화관의 역사가 시작돼 금강관이 화재로 소실된 뒤 1932년 공주극장이 새로 문을 열었다.
위 교수는 "대전은 교통 입지적 환경과 행정중심지 그리고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교차하는 곳으로 극장을 경유한 대중문화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도시"라고 이날 발제를 시작했다.
특히, 위 교수는 한국전쟁 동안 대전은 이념의 선전장이자 전쟁 소식을 전하고 미국 문화를 전달하는 창구였다고 분석했다.
위 교수는 "해방 후 대전극장에서 명칭을 변경한 시공관은 전쟁 상황에서는 학교를 대신했는데, 영화를 교육용 교재로 활용했는데 '카네기홀(1947)', '악성 헨델(1942)' 등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라며 "전시 물자 수급과 전력 공급의 불안정 때문이었는지 대전지역 극장에서 상영한 외화는 개봉 이후 수년의 시간이 지난 작품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전에 3관구 사령부를 비롯해 예하 육군통신학교가 있었고, 육군교육총본부의 이전, 대전비행장과 공군기술교육단 등이 주둔해 군사요충지로써 독특한 극장문화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1957년 1월 18일자 중도일보에 게재된 대전극장과 시공관에서 각각 상영하는 상영작과 시간 정보를 담은 하단 광고. |
전쟁 후 대전에서 극장을 운영한 관주를 분석한 위 교수는 그들이 상업과 유통업으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극장업에 뛰어들었고, 교육계와 문화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밝혔다. 대전에서 최대 객석을 갖춘 신도극장 관주 김기량은 대전역 앞 인동에서 건자재를 비롯한 철강재를 판매하던 상인이었고, 신도극장 성공을 기반으로 1965년 삼광중학교를 설립해 이사장에 취임했다. 한국전쟁 피란민이었던 김종준은 대전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동양극장을 개관하고 이것은 훗날 아카데미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경심관에서 시작한 대전극장은 1960년대 들어서 의료업으로 성공한 지산 임달규 집안에서 운영했으며, 그의 부친 오경호는 1969년 대전극장 대표이자 전국 극장연합회 충남지역 이사를 역임했다. 대전 중앙시장 포목상 오영근은 중앙로네거리에 1963년 3층 규모의 건물을 신축하면서 시민관을 문 열고, 건물 1~2층은 962석의 극장으로, 3층은 대전문화원 사무실로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위 교수는 "시민관은 3~4명의 영사기사와 미술부원 그리고 5명의 선전부원을 비롯해 건물 미화와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까지 고용한 1960년대 이상적 개봉관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시민관은 1970년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동양백화점이 세워졌다.
또 중앙시장에 있던 중앙극장은 외화 전문 상영관으로 1950년 '극장왕'으로 불린 서울 단성사의 관주 김인득이 운영했다. 적산 대전극장에서 출발해 휴전 직후 미국 문화의 공연 장소였던 시공관이 중앙극장으로 바뀐 것으로 1962년 1241석의 대규모 극장이었으며 대전역과 더불어 중앙시장까지 극장 흥행 성공을 보장하는 최고의 조건을 갖췄다.
1998년 12월 28일자 중도일보 하단 광고. |
위 교수는 "전후 대전은 도시를 재건하고 유통 중심도시로 자신의 정체성을 재정비하면서 극장을 대거 등장시켰다"라며 "대전역의 존재가 전쟁 후 신설 극장의 등장을 가져오고 역동적인 극장 문화를 형성했음에도 이에 주목하지 않은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밝혔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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