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破(깨뜨릴 파) 鏡(거울 경) 再(거듭 재/두 번) 不(아니 불) 照(비출 조)
출 처 : 사기(史記) 제, 태공세가(齊, 太公世家) 습유기(拾遺記) 왕가(王嘉)
비 유 : 한번 이혼(離婚)한 부부(夫婦)는 재결합(再結合)하기가 어렵다.
우리 속담(俗談)에 '엎질러진 물이요, 쏜 화살'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 번 벌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또는 한 번 헤어진 부부(夫婦)나 친구(親舊)는 다시 결합(結合)하기 힘들다는 뜻으로도 많이 쓰인다.
동의어(同義語)로는 이발지시(已發之矢, 이미 쏜 화살), 복수불수(覆水不收, 엎어진 물은 회수할 수 없다) 낙화난반지(落花難返枝, 한번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 言生更難收(언생갱난수, 말한 것은 다시 걷어드리기 어렵다) 등이 있다.
이 이야기는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는 강태공의 이야기로 약 3,000여 년 전 중국의 고대국가인 주(周)나라의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의 폭군인 주왕(紂王)을 몰아내는데 큰 공을 세워 그 공로(功勞)로 제(齊)나라의 제후(諸侯)가 된 강상(姜尙/ 후일 강 태공)이 젊고 벼슬하지 아니하였을 때의 이야기이다.
강상(姜尙)의 아내 마씨(馬氏)는 학문에만 열중하고 가정은 아예 돌보지 않는 남편을 몹시 원망하며 살았다. 남자의 경제활동 부재로 강상(姜尙)의 집은 매우 가난했다.
따라서 아내 마씨(馬氏)는 남의 집에 가서 하루 품을 팔아 가정을 돌보면서도 틈틈이 가을철이 되면 추수가 끝난 남의 논둑, 밭둑에 피(稷)를 훑어 말려 그것을 빻아서 양식으로 삼아 먹고 살기도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남의 논에서는 버리는 피(稷)를 훑어서 마당에 멍석을 펴고 그 위에 피(稷)를 널어놓고 남의 집에 품을 팔러가면서 글을 읽고 있는 남편에게 말하기를 "여보 오늘 비가 올 것 같으니 비가 올 때에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멍석에 널은 피(稷)를 걷어 들여 주세요!" 라고 신신당부하고 나아갔다.
그날따라 아내가 돌아오기 전 소나기가 쏟아졌고, 남편을 믿고 안심했던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멍석을 치우지 못해 애써 훑어온 피(稷)가 몽땅 물에 씻겨 떠내려갔다. 그런데도 남편은 여전히 글 읽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아내 마씨는 손이 부르트도록 훑어 온 피(稷)가 빗물에 다 떠내려갔으니 화가 날대로 났다. 그래서 마씨 부인은 "당신 같은 사람과 살다가는 밥 굶어 죽겠다."고 하면서 그만 보따리 싸가지고 집을 나가고 말았다. 이 때부터 강상(姜尙)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아가는 신세가 되었고, 이후 글과 낚시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사냥하러 왔다가 강상(姜尙)과 만나게 되고, 그의 학문과 재능을 인정한 문왕(文王)은 그를 등용(登用)하여 포학(暴虐)한 은(殷)나라를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功)을 세웠다. 이에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된 강상(姜尙)은 제(齊)나라 초대 왕(제후)이 되어 부임하게 된다.(이후 강 태공)
부임하는 날 많은 사람들이 길에 엎드려 신임 왕을 환영하는데 강태공(姜太公)눈에 낯익은 노파가 눈에 띄었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니 헤어진 부인 마씨(馬氏)였다.
강태공(姜太公)이 그 여인을 자기 가마 앞으로 불러 말을 하다 보니 마씨(馬氏)도 익히 듣던 목소리라 눈을 들어 보니 엣 남편임을 알고 엎드려 말하기를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니 저를 거두어 주소서"라고 애원하면서 재결합(再結合)을 요구 했다.
그러자 강태공(姜太公)은 수행원에게 물 한 동이를 길어오게 하고, 마씨(馬氏)에게는 그 물을 땅에 쏟아 버리라고 한 다음,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동이에 담아 보라고 하였다. 마씨 부인은 물을 다시 담으려고 했으나 담지 못했다.
그러자 강태공이 말하였다. "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지른 물은 동이로 돌아갈 수 없고, 깨진 거울은 다시 비칠 수 없다.(覆水不返盆 破鏡再不照/복수불반분, 파경재불조)"하면서 마씨 부인을 거두어 주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곤경과 역경을 참고 견디는 인내심의 필요(마씨 부인)와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작은 노고는 감수해야 한다(강태공)는 엇갈린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의 중요성에 비추어 본다면 어떠한 경우라도 한번 맺어진 인연은 헤어지는 불행이 있으면 안 된다.
요즈음 인생후반에 많이 발생하는 이른바 황혼이혼(黃昏離婚)이 많다. 행복을 위해 자기주장만 앞세워 갈라서지만 그 시간 이후부터는 오히려 괴로운 시간의 연속이다.
선조(先祖)들께서는 남녀결합을 천륜(天倫)이라 하고, 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家庭)은, 서로 백번이라도 양보, 이해하고 살아야함을 최우선적 가르침으로 삼았다.
본 고사(古事)는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 일이다.
여성의 역할이 중요시 되는 요즘 현시대에는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오히려 무능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해준 부인을 동정하고, 아내를 버린 남자를 잘못된 사람으로 비판하는 독자가 더 많다.
어떤 사람 의견은 '밥 굶기는 무능한 남편을 떠났으면 잘 살아 멋진 모습으로 보라는 듯 당당하게 나타나야 한다.'는 동정하는 의견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남자가 일국의 재상까지 되어서 출세했다면,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옛 시절을 생각해서 너그럽게 받아 줄 수 있는데, 뭘 그리 유달리 문자까지 써가며 냉정하게 대하느냐!.'고 하는 사람이 많다. 정답은 없다 답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천륜(天倫)을 소중하게 여겼던 옛 선현(先賢)들의 교훈은 어떠했을까?
夫婦人倫之始 萬福之原(부부인륜지시 만복지원
雖至親至密而亦至正至謹之地(수지친지밀이역지정지근지지)
부부는 인륜의 시작이고, 만복의 근원이다. 비록 지극히 친하고, 지극히 가까운 사이지만, 또한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삼가(조심/공경)해야 하는 관계이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맏손자 이안도(李安道)의 혼례 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부부지간에 예의(禮儀)를 지키며 서로 공경(恭敬)하는 삶이야말로 백년해로(百年偕老)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일 것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장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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