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봉항리 교회 모습 |
9일 '병천교회 선교 백년사'에 따르면 봉항리교회는 1908년께 교인이 내준 빈집에서 시작해 교인들과 주민, 학생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면서 1933년 7월 16일 새 건물을 짓고, 같은 해 10월 26일 25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축성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산으로 둘러싸여 고립된 지역에 위치한 봉항리교회는 초기 성공회 한옥교회의 모습인 제대와 제대 뒤 신부의 준비 공간, 남녀가 다른 출입구를 사용하는 점 등의 특징이 잘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내부 서까래와 같은 구조물이 선명하게 보존돼있어 근대 건축사의 흐름을 알게 해주는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병천면의 근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교회는 당시 종교의 기능뿐 아니라 근방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함께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기록에는 병천면 봉항리라는 작은 농촌 마을에 60여명의 학생들이 다녔고, 특히 학령기에 있는 모든 학생은 교회가 만든 진명학교(또는 신명학교)를 다녔을 것이라고 남겨졌다.
천안 봉항리 교회 내부 |
하지만 1930년대 100여명이었던 신도가 1960년대 10명으로 줄자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혀지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다.
이후 수풀이 교회 주변으로 사방을 뒤덮고,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 생기는 등 현재는 대대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봉항리교회는 주민들에게 근대식 교육을 제공하면서 병천면에서 발생한 '아우내 독립 만세운동'에 영향을 줬고 근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병천교회 장동윤 신부(세례명 미카엘)는 "오래전부터 봉항리교회는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건립된 지 100년에 가까운 근대 건축물이다 보니 최근에는 건축 분야 전문가들이 많이 연락이 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를 관리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지역의 역사적인 건물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천안=하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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