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광 원장 |
이 어려운 시기에 정부가 과학기술에 우선 투자한 결과, 우리나라는 당시 1인당 GDP가 300달러에 불과하던 최빈국에서 50여 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제 우리 기업들은 반도체, 이차전지, 미래자동차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메모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시장의 1, 2위를, 파운드리 분야도 삼성전자가 대만의 TSMC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첨단 산업분야에서 세계 최고이지만, 반도체 제조 역량은 뒤떨어져 있어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한국과 대만 반도체기업의 미국 내 공장 설립을 유도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전 세계 반도체 메모리 시장의 80%를 차지했으나, 이제 반도체는 물론 대부분의 전자산업이 한국에 추월당해 1인당 GDP뿐만 아니라 수출 총액에서도 한국에 뒤처지게 됐다.
이번 UKC는 한국의 이같이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미국물리학회 現 회장인 시카고대 김영기교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토머스 쥐트프 스탠퍼드대 교수 등 세계적인 석학들뿐만 아니라 헬스케어 스타트업 Noom의 창업자 정세주대표 등 기업가들도 대거 참여했다. UKC 2024는 AI 시대의 글로벌 현안과 과학기술적 이슈에 대한 발표 및 토론, 현재와 미래 리더들의 의미 있는 멘토링과 네트워킹을 하며, 과학기술과 대중이 소통하는 장이 됐다.
한편, 대전시는 최근 시의 정체성으로 과학수도를 표방하고 있다. 그런데, 과학수도의 의미와 역할은 무엇일까?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대덕특구에는 26개 출연(연)과 7개 대학, 2400여 개의 기업, 1만 7000여 명의 박사급 인재들이 모여 있다. 이처럼 과학 역량이 집결된 대덕특구가 위치한 대전은 2022년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한 과학기술 집중지역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한 과학도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과학도시를 넘어 과학수도가 되려면 그 역할이 명확히 정의되고, 무엇보다도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지자체들도 서로 다른 이름의 수도를 표방하고 나설 게 뻔한 상황에서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법적 근거를 갖추기보다는 과학수도를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비전과 목표를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과학수도, 대전이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섣부르게 정하기보다는 대전지방정부, 대덕특구, 시민 등 대전시 구성원과 혁신 주체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과학수도의 비전과 목표를 차분히 정해나가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점은 미래에는 전 세계 과학기술 인력과 첨단기술 및 공급망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수도는 단순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중심이 아니라, 글로벌 과학기술 및 첨단산업의 중심이 돼야 한다. 과학수도는 대덕특구의 과학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과학자와 첨단산업 분야 최고 전문가가 함께 모여 세계적인 난제를 논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교류하여 융합과 혁신을 촉발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도시를 옮겨 다녀 축척이 어려운 UKC와 대비되는 매년 새로운 지식을 쌓아 축적해 나가는 도시형 과학기술협력 플랫폼이 과학수도, 대전의 비전이 될 수 있다. 대전지방정부는 대덕특구 과학자들과 함께 매년 시의성 있는 주제(theme)와 아젠다를 정해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출연연과 대학 등은 기관별 또는 학문·산업 분야별로 준비 중인 다양한 컨퍼런스, 세미나, 워크숍 등을 하나의 캘린더에 list-up하여 연계한다면 대전시가 글로벌 과학기술 이슈를 선점하고, 선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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