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은 태백산맥 동쪽 또는 대관령 동쪽을 이르는 말이다. 이 지역 역시 팔경이 있어, 관동팔경이라 한다.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이다. 시인묵객이 유람하며 노래하고 그렸다. 2주 전에 언급하였던, 정선, 김응환, 김홍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묵적 감상에 푹 빠져있자니 그림에서 추억이 연신 걸어 나온다. 짧은 시간에 많은 지역을 찾기 위해, 아내와 둘이서 현지 택시를 이용한 적이 있다. 사진 촬영지점에 익숙한 택시 기사가 자세도 잡아주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번은 아내를 업고 찍으라 했다. 그곳이 의상대 앞이다. 의상(義湘)이 좌선하던 곳 아니던가? 예전에는 암자가 있었다 하나, 1925년에 지은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위 풍광이 매우 빼어났다. 특히 일출이 으뜸이라 한다. 명소에서 업고 노는 것이 쑥스러웠다. 주마등처럼 여러 생각이 스친다.
등에 업는 것은 아이에겐 요람이다. 그 편안함에 울던 아이도 잠이 든다. 업는 것은 헹가래와 같은 축하 의미도 있다. 칭찬, 감사, 자비, 사랑의 표현이요, 사랑놀이 이기도 하다. 기사는 어떤 의미로 업으라 했을까? 아마도 사랑하라는 뜻이었을 게다. 수십 년 지나고 보니, 감사하며 살라는 인생 선배의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내게로 와준 것만으로도 축복이요 최고의 선물 아닌가? 평생 업고 살아도 부족할 판이다.
판소리 <춘향가>중 사랑가도 떠오른다. 이몽룡이 먼저 진양조로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로 시작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 하자, 사랑을 논한 후에, 좋을 호(好)자로만 놀아보자 어른다. 아니리로 숨 돌리고, 중중모리장단과 함께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로 주거니 받거니 노래하며 흥겹게 논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 무르익어 꿀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이다.
사찰 주위에 배치한 소나무로 낙산사에 눈길이 먼저 간다. 편파 구도지만 편안한 느낌이다. 드론과 같은 비행장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림과 같은 모습이 실제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구석구석 살핀 개별 모습을 모두 보여주기 위해 심원법으로 재구성하였으리라. 그렇다고 모든 구조물이 그려진 것은 아니리라. 생략은 다반사다. 중앙 숲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홍련암이, 그 아래 숲 옆에 의상대가 있었을 것이다. 둘 다 낙산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나중에 홍련암이 세워진 그 아래 관음굴 입구에서 의상이 7일 동안 재계하여 용중(龍衆: 용의 무리)과 천중(天衆: 하늘나라의 사람들) 등 8부신장의 인도로 굴속에 들어간다. 공중을 향하여 예배드려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받아서 나오는데, 동해의 용이 여의보주(如意寶珠) 한 알을 다시 바쳤다. 의상은 이들을 가지고 와, 다시 7일 동안 재계하여 홍련위에 나타난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보았다 한다. 관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이다. 관음보살이 인도한 곳에 금당을 짓고 관음상과 두 구슬을 성전에 모신 뒤 절 이름을 낙산사라 하였다.
앞에서 언급하였듯, 의상대 일출의 유명세가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작가도 익히 알고 있었던 듯 오른쪽 끝 부분에 태양이 떠오르게 했다. 태양은 희망의 상징이다. 싣달다가 강에게 묻고 들었듯, 해조음으로 돈오돈수(頓悟頓修)하고 떠오르는 태양 바라보며 불국정토(佛國淨土) 꿈꾸었을 의상대사, 그를 그려낸 시인묵객의 성찰이 다가온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시인, 수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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