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
1937년에 미국 테네시주 소재 제약회사인 마센길(Masssengill company)이라는 제약회사는 설파제라고 널리 알려진 설파닐 아마이드 성분의 항생제를 액체형태로 만들어 새롭게 시장에 출시했다. 설파제는 효과 좋은 항생제로서 많은 생명을 구한 기특한 약이었다. 하지만 알약형태의 항생제는 알약을 삼키기 힘든 사람이나 어린아이들에게는 효율적인 투여 형태는 아니었다. 마센길사는 판매범위를 넓힐 목적으로 설파제를 달콤한 맛이 나는 용액에 녹여 판매를 하게 된다. 이때 설파제를 녹인 용매는 '디에틸렌 글리콜'로 자동차 부동액의 주성분인 이 물질은 무색, 무취지만 달콤한 맛이 나는 점성질의 액체다. 지금도 미국에서 이 액체에 매년 5000명 이상의 중독된 사례가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시판되는 부동액은 스포츠 이온음료와 같은 색깔을 띠고 있어 혼동해 마신 경우 심각한 중독증상을 보이며, 주로 신경계와 신장, 심장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 가보자. 단맛이 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향의 액체 설파제는 미국 전역으로 판매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액체 설파제를 복용한 사람 중에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시작됐고 사망환자들에게서 공통된 부작용 반응이 관찰됐다. 마젠길사는 처음 사망자 보고가 있었을 때, 약물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의 지병에 의한 사망사례일 것이라고 대응했다. 그러던 중 유사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했고 사망자의 수도 늘어갔다. 급기야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약물을 회수했지만 이미 많은 양이 유통돼 약을 복용한 350여명 중 100여명이 사망했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디에틸렌 글리콜이 위험한 물질인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약품을 녹여서 팔 생각을 처음부터 안 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벌어진 것일까라고 말이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규제에 엄격하기로 알려진 US FDA(미국 식품의약청)도 이미 설치돼 운영되고 있는 중이었지만 디에틸렌 글리콜에 대한 독성정보는 전혀 파악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사건이 발생한 시기 US FDA의 규제는 엄격하지 않았고, 새로운 약품에 대한 독성자료의 의무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US FDA는 사건 발생 1년 뒤인 1938년, 규제법안을 통해 독성자료 제출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독성학의 흐름을 살펴보면 항상 비슷한 패턴이 보인다. 큰 사건이 발생해야 심각성을 깨닫고 법적인 규제와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을 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같은 맥락이다.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국가적 차원에서 잠재적 독성을 갖고 있는 물질을 선별해 관리하는 '국가 독성감시 시스템'(가칭)을 가동해야 한다. 신규로 합성·유통되는 물질의 정보를 확보하고 산업계의 동향을 파악하여 잠재적 위험도가 높은 물질에 대해 우선적으로 독성평가를 수행해 향후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물론 인력과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과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선제적 투자와 과감한 실행이 필요한 때다.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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