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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그렇게 일상은 기온의 유별난 변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며, 진행되는 일이 비슷하고, 특별히 드러난 것이 없으면서, 덧없이 지나간다. 이것이 일상의 삶인데, 필자는 팔월 초에 더위를 몰아내는 '단 한 번의 독특한 시간'을 만났다.
그 사건은 파리 올림픽 탁구 혼합 복식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후 주먹을 움켜쥐고 눈물을 훔치는 선수를 보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외친, 중계 아나운서의 멘트, 그것이다.
필자는 일상의 사소한 것으로부터 발생한 사건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만난 '무더움이란 물리적 사건'과 '울음 울 자격이 있다는 언어적 사건'이 마주쳐서 우리를 또 다른 일상의 풍경 속에 '음미하는 삶'으로 바꿔주었다. 특히 이 '눈물'은 무력했던 일상 속에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계절에 갇히지 않을 풍경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눈물을 흘릴 자격'이란 더위를 몰아낸 보양어(保養語)를 맛보면서 한 때, 꼼꼼히 읽었던 소설 『종이시계』(앤 타일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임신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숨쉬기 연습을 권한다. 그러자 아직 십대의 철부지 며느리는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숨쉬기 연습(Breathing Lessons)이라뇨. 도대체 제가 이 나이에 숨쉬는 법도 모른다는 거예요?"
하지만 숨쉬기 연습이라는 이 말에는 역설이란 엄혹한 '사실(fact)의 고갱이'가 숨어있다. 일상을 이어간다는 무미건조한 일도, 아이를 생산하는 소중한 일도, 나라를 경영한다는 거창한 일도 숨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일은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잘해 내려면 연습과 훈련에 익숙해져, '잘 쉬는 숨'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언(苦言)이다.
가령 숨쉬기 연습이란 묵살되는 부상의 부담, 숨어있는 인격 무시 태도, 소모적인 경쟁의 압력, 까닭 없는 냉소(질투) 등을 애써 외면하거나 잊으려 하거나 덮어두려 하지 않고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이겨냄을 함의한다. 감성적 해석을 덧붙인다면 낙담속의 장탄식,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 턱턱 막히는 마른 숨, 고통과 아픔 속에서 길게 몰아쉬는 한숨 등 서툰 숨쉬기나 고르지 못한 호흡을 가다듬어 이겨낸 결과다.
매끈하고 상쾌하게 울린 '울음을 울 자격'이란 언어적 아나운서멘트는 '눈물이란 생리적인 액체가 아픔을 이겨낸 화학적 땀'으로의 변환을 거친다. 이는 일의 이룸의 기쁨, 성장과 도약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좌절의 슬픔, 쇠퇴와 영락의 괴로움도 그 마땅한 폭과 깊이에서 느껴져야 한다는 심미적 삶으로의 멋진 메타포적 표현이다.
이제 노염(老炎)속 더위에 지쳐 노래를 멈춘 풀벌레가 옅어진 향기를 내 쉬며 "꼭 기억하게. 수고했네. 자네가 이겨낸 지난여름이 자네를 보고 있어.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분투하기 바래. 그래야 지나간 시간이 비로소 가치를 띨 테니 말이야. 그러니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내 보게. 자네라면 가능할 거야. 난 믿고 있다네. 나는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있어."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9월은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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