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습니다"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습니다"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 승인 2024-08-27 16:27
  • 신문게재 2024-08-28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았던 한 낮의 '폭염(暴炎)'과 열 대야에 물을 채워 열 번을 뒤집어쓰면 이겨낼 수 있다는 열대야(熱帶夜)도 지쳤는지 이제는 아침저녁으론 바람의 기색과 햇빛의 기세, 하늘의 빛깔이 달라진 걸 감지하면서 한 해의 팔 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다.

그렇게 일상은 기온의 유별난 변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며, 진행되는 일이 비슷하고, 특별히 드러난 것이 없으면서, 덧없이 지나간다. 이것이 일상의 삶인데, 필자는 팔월 초에 더위를 몰아내는 '단 한 번의 독특한 시간'을 만났다.

그 사건은 파리 올림픽 탁구 혼합 복식 동메달 결정전이 끝난 후 주먹을 움켜쥐고 눈물을 훔치는 선수를 보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외친, 중계 아나운서의 멘트, 그것이다.

필자는 일상의 사소한 것으로부터 발생한 사건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만난 '무더움이란 물리적 사건'과 '울음 울 자격이 있다는 언어적 사건'이 마주쳐서 우리를 또 다른 일상의 풍경 속에 '음미하는 삶'으로 바꿔주었다. 특히 이 '눈물'은 무력했던 일상 속에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계절에 갇히지 않을 풍경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눈물을 흘릴 자격'이란 더위를 몰아낸 보양어(保養語)를 맛보면서 한 때, 꼼꼼히 읽었던 소설 『종이시계』(앤 타일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임신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숨쉬기 연습을 권한다. 그러자 아직 십대의 철부지 며느리는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숨쉬기 연습(Breathing Lessons)이라뇨. 도대체 제가 이 나이에 숨쉬는 법도 모른다는 거예요?"

하지만 숨쉬기 연습이라는 이 말에는 역설이란 엄혹한 '사실(fact)의 고갱이'가 숨어있다. 일상을 이어간다는 무미건조한 일도, 아이를 생산하는 소중한 일도, 나라를 경영한다는 거창한 일도 숨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일은 공짜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잘해 내려면 연습과 훈련에 익숙해져, '잘 쉬는 숨'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언(苦言)이다.

가령 숨쉬기 연습이란 묵살되는 부상의 부담, 숨어있는 인격 무시 태도, 소모적인 경쟁의 압력, 까닭 없는 냉소(질투) 등을 애써 외면하거나 잊으려 하거나 덮어두려 하지 않고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이겨냄을 함의한다. 감성적 해석을 덧붙인다면 낙담속의 장탄식,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 턱턱 막히는 마른 숨, 고통과 아픔 속에서 길게 몰아쉬는 한숨 등 서툰 숨쉬기나 고르지 못한 호흡을 가다듬어 이겨낸 결과다.

매끈하고 상쾌하게 울린 '울음을 울 자격'이란 언어적 아나운서멘트는 '눈물이란 생리적인 액체가 아픔을 이겨낸 화학적 땀'으로의 변환을 거친다. 이는 일의 이룸의 기쁨, 성장과 도약의 즐거움뿐만 아니라 좌절의 슬픔, 쇠퇴와 영락의 괴로움도 그 마땅한 폭과 깊이에서 느껴져야 한다는 심미적 삶으로의 멋진 메타포적 표현이다.

이제 노염(老炎)속 더위에 지쳐 노래를 멈춘 풀벌레가 옅어진 향기를 내 쉬며 "꼭 기억하게. 수고했네. 자네가 이겨낸 지난여름이 자네를 보고 있어. 힘들지만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분투하기 바래. 그래야 지나간 시간이 비로소 가치를 띨 테니 말이야. 그러니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내 보게. 자네라면 가능할 거야. 난 믿고 있다네. 나는 여전히 나를 응원하고 있어."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9월은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