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법대로 처리' 교육계 "아이들 화해하는 법 잊을까" 우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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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법대로 처리' 교육계 "아이들 화해하는 법 잊을까" 우려의 목소리

대전 내 학폭 건수 2023년 1699건, 올 3~8월만 1036건
교사, 학폭예방법에 따라 단순 다툼에도 무조건 신고해야
"교사로서 역할 하려다 아동학대로 고소당할까 두렵" 위축

  • 승인 2024-09-02 17:28
  • 신문게재 2024-09-03 6면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학교폭력이미지
학교폭력 이미지. /연합뉴스
#1. 대전 A 중학교의 한 학생은 같은 반 친구가 자신을 째려봤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했다. 교사 차원에서 학생 간 오해를 해소하며 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경미한 사안이지만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절차대로 조치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2. 하교 후 학원가에서 서로 다른 학교의 학생들이 다투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 밖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학생이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으로 분류됐다. 교사들은 가·피해학생에 대한 선행조사를 위해 타 학교 학생부장 선생님과 소통하느라 시간을 쏟고 있다. 하교 후 발생한 일로 교사가 막을 수 없는 일이었음에도 학부모 민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대전 내 학교폭력 발생 건수가 매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가운데 학교현장에선 사소한 사안에 대한 내용마저도 교육적 해결이 불가한 상황이다. 교사들이 학교폭력에 대응할 수 없는 환경인 데다 모든 사안이 사법적 차원으로만 해결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일 대전교육청 학폭제로센터에 따르면 3월 4일부터 9월 2일 오후 3시까지 학폭 접수건수는 서부 706건, 동부 455건으로 총 1161건이다. 2023년 같은 기간 서부는 771건, 동부는 380건으로 총 1151건이던 수치에서 늘어난 상황이다. 2023년 한 해 동안 대전 내에서 학폭이 발생한 건수는 서부 1053건, 동부 646건으로 총 1699건이다.



현재 학교 내외에서 발생하는 모든 학폭 사안은 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조치하고 있다. 한 학생이 일방적으로 학폭 접수를 하게 되면 두 학생은 분리 조치하는 방침이 있어 교사들이 학생들의 사소한 다툼까지도 교육적으로 훈계할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현행 학폭예방법을 살펴보면 학교 내외에서 학생 간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등 신체·정신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교사는 학폭을 인지하는 순간 학교마다 설치된 학폭 위원회에 신고해야 한다. 경미한 다툼이라 판단하고 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 학부모에 대한 민원은 고스란히 교사의 몫이 되고 있다.

교사들은 학부모 민원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며 교육적 차원의 해결보다 법에 따른 처리를 안전한 조치로 인식하고 있다.

교사가 학폭을 신고하거나 피해학생이 학폭 접수를 했을 때 올해 3월 도입된 학폭전담조사관이 가·피해학생 대면조사를 실시하고 이후 학폭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사안에 대한 처리를 의논·결정하고 있다.

학폭이 접수되고 피해학생이 원할 때 학생 분리조치는 필수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화해의 장을 차단하는 제도라며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교사들은 이런 절차로 인해 교육적 해결이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교사들은 학폭예방법 개정을 통해 교육적 처리에 나설 수 있는 법적 근거 마련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5월 교사노동조합연맹은 서이초특별법 추진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고 학폭예방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낸 바 있다. 교원 자격을 갖추고 교육경력이 있는 인원을 학폭전담공무원으로 배치해 사안처리 등 경직된 형태를 완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현재 교사를 보호해줄 수 있는 법령이 미비하기 때문에 교사들이 학생 지도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교사들이 가해학생을 대상으로 훈계했을 때 학부모의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학생 훈계를 기피하고 있다.

지역 교육계는 이런 위축된 학교환경이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대전교사노동조합 관계자는 "교사로서 역할을 하려다 고소를 당하고 피해를 입고 있는데 보호받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것에 허탈함을 느낀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추후엔 아이들이 서로 화해하는 방법을 잊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폭전담조사관 투입 등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법적 모순은 많다"고 덧붙였다.
오현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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