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100미터 달리기'에서 '천천히 걷는 것'으로 습관을 바꾸기까지는 6개월쯤 걸렸습니다. 특히 히말라야 트래킹이 계기가 되었지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300미터)까지 올라갔으니까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왕복을 하는 데에 하루에 7~8시간씩 일주일을 걸었어요. 당시 우리를 안내한 오지 탐험가(한국인)가 권고한 고산 등반 요령이 큰 교훈이 되었고 지금도 자주 되새깁니다.
그분은 "먼저 천천히 걸어라, 천천히 올라가면 고소증에 걸리지도 않고 누구나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다 올라가서 쉬지 말고 쉬어가면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사람이 산행을 할 때는 앞사람을 보지 말고 뒷사람을 보면서 걸으라"고 했습니다. 요약을 하면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이웃 배려'의 원칙이지요. 이것은 단지 고산 등반 요령만이 아니라 인생의 철학으로 환치할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디지털 사회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변화에 잠시 눈을 떼어도 많이 뒤처지는 것을 실감할 정도니까요. 휴대폰을 통해서도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습니다. 각 분야의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정보들이 쉽게 확인되고, 휴대폰에 대고 말만 해도 번역도 되고 속기도 됩니다. 우리말로 쓴 글들이 동시 번역되어 외국인에게 전달이 됩니다. 챗 GPT에게 물어보면, 전문적인 것일지라도 대부분 정확한 답변이 나옵니다. 이렇게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급속히 변화하는 기술 진보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이제 어느 정도 느림의 삶에 적응이 되어가는데, 세상의 변화는 그것마저도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세상의 변화에 뒤지지 않으려고 더 조바심을 내고 있는 모습이 스스로에 대해 측은지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변화를 수용하고, 10년 전 네팔의 카트만두에서 다짐했던 '천천히, 무리하지 않고, 이웃 배려'를 지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인디언 속담에도 느림에 대한 속담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 빨리 걷지 마라.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인디언들은 6월을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산딸기가 익어가고 옥수수가 제 모양을 갖추어가는 한 해의 중반을 묵묵히 반추하듯 거미를 바라보면서 영혼과의 교감을 꾀하라는 것이겠지요. 또한 인디언들은 11월을 '영혼이 따라올 수 있게 쉬는 달'이라고 부른답니다. 한 해를 마감하기 전, 영혼이 육체와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느림과 고행을 감수하면서 꾸준히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걷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리게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일이며 동시에 앞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느림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한 확고한 의지일 것입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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