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다.
45년 전에 가르친 제자들이 찾아온다는 말 한 마디에 많이도 즐거웠다.
서울, 천안, 당진 사는 45년 전 제자들이 떼로 몰려왔다.
오랜 세월 잊지 않고 찾아온 제자들이니 이 어찌 즐겁고 기쁘지 않겠는가!
상전벽해라는 말도 있지만, 45년 세월이 이런 저런 얼굴들을 많이도 바꿔 놓았다.
청순하고 예뻤던 19살, 고왔던 동안들이 잔주름 잡힌 낯의 할머니들로 나타났다.
얼굴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단지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무릴 지어 몰려왔다. 이 번 못 온 친구들이 10여 명이나 된다 했다. 명년 봄에 날 잡아 떼로 몰려온다 했다.
눈앞의 제자들을 차례로 포옹을 했다. 조수빈, 정민자, 강의식, 한은순 출석 부르는 심정으로 호명하며, 하나씩 포옹으로 반겨주었다. 기쁨이요, 즐거움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수십 년 헤어졌다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과도 같은 감회였다.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만남이 바로 그거였다.
그냥 얼굴만 봐도 기쁨인데 뭘 많이도 가져왔다. 사과 박스, 꿀병으로도 모자라 벌이 만든 화분에, 미역, 건강 기능 식품까지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왔다. 담임이 암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건강에 좋다는 온갖 제품들을 다 끌고 온 것이었다.
가지고 온 물건들이 내용만 달랐지 옛날 담임을 위하는 마음으로 통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꾸러미에 사과박스까지 가세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정작 정성과 사랑이었다.
암환자라면 누구에게 물어봐도 명약이나 선약을 절실히 원할 것이다. 명약 선약은 특별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사랑이, 감사하는 마음이, 명약, 선약이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명약보다 더 소중한 얼굴들이 대전까지 몰려와서 기쁨을 주고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명약, 선약이 돼준, 따뜻한 가슴을 가진 할머니 제자들한테 느꺼운 감사를 표한다.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온 지상의 또 다른 천사들에게, 청출어람(靑出於藍)의 기쁨을 전한다.
'드리오리'란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으며 환담을 나눴다. 눈앞에 있는 얼굴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애처롭게 보였다. 19살 꽃다운 시절은 어찌하고, 머리는 희끗희끗 할머니들이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름살 잔주름이 인생무상을 실감케 하고 있었다.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만년 꽃다운 소녀로 살 것 같았던 얼굴들이 많이도 사그라들었다. 세월 앞에선 장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45년 전의 추억을 한아름 안고 온 제자들이 천연기념물 같아 보였다.
할머니 제자들이 가져온 사과 박스 속에서도, 벌이 만들어 낸, 화분 한 알 한 알에서도, 사랑이 숨 쉬고 있었다. 수개 성상 온혈가슴으로 발효시킨,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부처님의 자비가, 하느님의 사랑이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꿀병과 미역, 건강 기능 식품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긴 세월 잘 숙성된 제자들의 무르익은 사랑이, 정성이, 자리를 함께하여 이 늙은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있었다.
점심을 마친 후 제자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한국효문화진흥원으로 향했다. 전시관 관람을 제자할머니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1관부터 5관까지 해설을 풀코스로 도맡아 했다. 내 하는 봉사활동이 그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제자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제자 할머니들은 관광객, 옛날 담임은 안내 가이드, 그것도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임에 틀림없었다. 안내받는 할머니들이 45년 전 고3때 제자라는 사실을 알고, 주변사람들이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반은 호기심, 반은 부러워하는 시선들이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은 빨리도 도망친다더니, 시간을 붙들어 맬 수는 없었다. 제자들이 떠날 시각이 됐다. 소중하고 귀한 분들이기에 준비해 놓았던 꿀 한 병씩을 들고 가게 했다. 게다가 대전 명물로 알려진 성심당 소보로빵도 한 팩씩 챙겨 주었다. 운전하고 가다가 출출하면 들라고, 사과, 단감, 귤을 담은 플러스틱 용기 2개도 차에 실어 주었다.
제자들이 다녀간 지 4일 후에 또 택배 박스가 도착했다. 바리바리 싸고, 가져온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전립선에 좋다는 방울토마토를 한은순 제자가 2박스씩이나 보내온 거였다. 용광로가슴, 인향만리(人香萬里)가 말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45년 만에 할머니가 돼 찾아온 고3때 제자들'
논어에 나오는 글귀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아!(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45년 전 제자들이 참 많은 것을 깨달음으로 가르침을 주고 갔다.
이 나이 먹도록 비우고 채우지 못했던 걸 가슴으로 느끼게 교화시키고 갔으니 늘그막에 배우고 익혔어도 제자들을 평생 스승으로 삼아야겠다.
청출어람의 기쁨을 안겨 준 45년 전 제자들, 수빈, 민자, 의식, 은순에게 느꺼운 감사를 표한다.
우리의 인연이 오래오래 이어지는 감사와 사랑의 삶이 되게 하소서.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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