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준 원장 |
빨리 약을 타서 진료실을 나가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고, 이것저것 질문을 준비해서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다. 실제 환자가 많이 밀려 있지 않으면 질문에 답도 해드리고, 만성질환 관련 조언이나 교육도 해드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더구나 대기하는 환자분들이 많으면 조바심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병원 운영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환자를 매일 봐야한다.
그럼 왜 다수의 환자를 봐야 할까?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의원급(동네병원) 기준 2025년 외래 초진료 및 재진료는 각각 17,950원, 12,830원이다. 만성질환의 경우 대부분의 환자가 재진이기 때문에 재진료를 기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즉, 만성질환자 1명의 처방전 당 12,830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1분 만에 처방전을 줘도 12,830원이고, 20~30분 상담을 해도 12,830원이다. 만약 어떤 의사가 만성질환자 상담을 위해서, 잔소리를 제대로 하려고 동네에 의원을 열었다고 가정해 보자. 20분에 한 명씩 환자를 진료하면, 하루 8시간 기준으로 24명 정도를 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서 30명 정도 본다고 가정하면, 순수하게 진료로 번 금액은 384,000원이다. 여기에 초진 환자도 있을 수 있고, 관련 검사를 한다고 하면 하루 매출은 대략 500,000원 정도가 될 것이다.
한 달 기준 25일을 일한다고 하면, 대략 월 12,500,000원의 매출이 발생한다. 여기에 병원 임대료, 간호사 월급 (2인 기준, 4대 보험 포함), 세금, 운영비 (전기, 수도세, 의료기기 및 전자 챠트 같은 관련 소프트웨어 사용료 등등)을 제외하면 의사가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은 월 500만 원 넘기 힘들다. 그리고 이건 그나마 환자를 꽉 채울 때 이야기다. 만약 하루에 30명을 채우지 못한다면 수익은 더 줄어들 것이다. 운영면에서 보자면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들다.
그럼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중간에 만성질환 이외의 환자를 보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물론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이다. 단, 이렇게 하면 예약제로 할 수 없고, 오는 환자를 순서대로 진료할 수밖에 없다. 환자가 몰리는 시간에 몰리고, 없는 시간에는 없다. 환절기 감기 환자가 밖에 10명 대기하고 있는데 만성질환자를 위해 20~30분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결국 원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1분 안에, 5분 안에 처방전을 발급하게 된다.
또 다른 반응이 있을 수 있다. 그럼 20~30분 상담 및 진료에 대해서 비급여로 일정 금액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과연 의사의 잔소리를 듣기 위해서 추가 금액을 지불하고 병원에 올 환자들이 얼마나 될까? 의사가 이런 부담을 안고 개업하기는 어렵다.
고령화, 늘어나는 기대여명, 식생활 습관 및 환경의 변화 등을 고려하면 환자들의 삶의 질과 의료비 절감을 위해서는 늘어나는 만성질환자를 관리하고, 합병증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방안 중 하나다. 현재 먹고 있는 약은 어떤 종류인지, 환자의 건강 상태는 어떠 한지, 식생활 습관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등 설명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현재의 수가제도, 행위별수가제에서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일차의료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 등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아직 뾰족한 해답을 못 찾고 있다.
최근에는 '가치기반 수가제도 시범사업'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 또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리고 누군가는 선행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새로운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품은 많이 들어가고, 이익은 너무 작다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워질지도 모르는 결정을 선택하는 의사는 소수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말을 꺼낸 필자가 먼저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자신은 없다. 환자를 위한 잔소리 비용은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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