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윤 대전대 전 디자인아트대학장 |
한편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와 같이 종이책의 어려운 시간을 맞고 있긴 하지만 길을 걷다 보면 예전에 우리에게도 자주 있었던 헌책방 들이 많이 보이고 책 가게를 기웃대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며 얼핏 우리에게서 사라진 모습 중 하나를 보게 된다. 일본 도쿄의 힐사이드 테라스라 불리는 곳은 오래전 한 건축가와 지역의 노력으로 차츰 거리가 생기를 찾게 되고 유명한 츠타야란 이름의 책방이자 문화공간이 생겨났고 이곳이 크게 알려지는 잔잔한 조건들을 갖추게 되었다. 건축가는 얼마 전 작고한 후미히코 마키이며 그의 연속된 가로 블록 건축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확장된 이곳 다이칸야마 힐 사이드 테라스 거리의 변화는 무려 30여 년이 넘는 오랜 시간을 통해 점진적으로 성장해 왔다. 결코 대단하게 이루어진 정부의 지원이나 프로그램 없이도 자주적으로 차곡차곡 키워져 온 도시재생 성공 사례의 하나이다.
헌책을 주제로 책의 마을로 세계인의 시선을 받은 영국의 헤이 온 와이 역시 마을이 서로 의견을 모아 이룬 놀라운 조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런던에서 무려 4시간이나 걸리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골 마을이 해마다 이곳을 찾는 이들로 북적이는 마을이 된 것은 주제가 있는 헌책을 모으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한 괴짜 청년이 가진 취미의 집념이 마을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특별한 헌책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이곳은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이곳 헤이 온 와이는 우리의 파주 출판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책의 고향처럼 출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출판도시 조성의 정신적 전례가 되기도 했다. 파주 출판도시 도토리길을 따라 걷다 보면 200여 출판사들이 저마다 방문자들을 위해 각자의 방들을 열고 도시 탐험자들을 맞는다. 전체가 거대한 책의무덤 같은 이 도시를 보면 내로라할 출판사 건축 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끊임없이 자연과 함께 열려있는 건축은 자유롭게 책과 산책하는 가로가 되어 길을 내어준다.
뉴욕 하이라인 폐철도의 복원 역시 우리 도시재생의 귀감이 되는 사례로 서울역 앞의 고가차도를 폐기하지 않고 도시공원 길로 탈바꿈한 전례가 되었다. 도심을 지나던 3.1 고가가 사라지고 수난의 역사 속 청계천이 복원되며 저마다 걷고 싶은 도시 중심의 물길이 되어 날씨 방송의 배경이 되고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우리의 과거와 근. 현대 역사를 압출한 도시 속의 작은 도시가 되었다.
작은 공방 들이 아기자기한 힐사이드 테라스와 츠타야 책방, 우리의 청계천 역사적 물길과 부산의 부사동 책방 길, 북촌과 서촌의 아기자기한 골목길 등 쉼 없이 얘깃거리를 쏟아내는 거리들은 바로 도시 속의 작은 도시 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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