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극저온 냉각기술과 초전도 현상의 발견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극저온 냉각기술과 초전도 현상의 발견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4-08-15 15:49
  • 신문게재 2024-08-16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40815094951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연일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햇빛을 피해도 주변의 끓는 더위로 찜통에 들어온 느낌이 들고,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뜨거운 실내 온도를 낮춰주기 위해 에어컨을 작동시킨다. 무더운 날씨에도 실내를 쾌적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에 에어컨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에어컨은 냉매가 압축돼 액화하는 응축과 팽창돼 기화하는 증발의 과정을 반복하는데, 바로 팽창과 증발 단계에서 온도가 낮아진다. 단열 상태에서 기체의 부피가 갑자기 증가하면 온도가 내려가는 단열팽창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단열팽창을 통한 냉각기술은 1800년대 후반 프랑스 물리학자 카유테(Louis Paul Cailletet)의 우연한 발견을 통해 발전했다. 카유테는 아세틸렌 기체를 액화하기 위해 기계장치의 압력을 높이고 있었는데, 압력을 못 견디고 장치에 작은 구멍이 발생했다. 이 구멍으로 아세틸렌 기체가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면서 구멍이 아주 차갑게 냉각된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 발견으로 고압의 기체를 단숨에 팽창시켜 온도를 낮추는 기술을 개발해 산소 액화에 성공했다. 산소의 끓는점이 섭씨 -183도임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성과였다.

그 후 냉각기술은 더욱 발전했으며, 1898년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듀어(James Dewar)는 섭씨 -253도에서 수소 액화에 성공했다. 듀어는 일반 용기를 활용한 단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두 겹의 유리 용기를 만들고, 유리 사이를 진공상태로 만들어 전도에 의한 열전달을 최소화했다. 또한 빛을 반사하는 물질을 표면에 발라 복사에 의한 열전달도 차단했다. 어쩌면 우리에게 친숙한 텀블러의 최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듀어는 수소 액화에 성공했으며 수소가 액화된 후에는 헬륨만이 기체로 남아있었다.

극저온 냉각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과학계에는 새로운 궁금증이 시작됐다. 온도에 따른 전도체의 저항이 어떻게 변하는가? 당시에는 전도체의 저항은 온도가 낮아질수록 낮아진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으나 절대온도 0K(섭씨 -273도) 근처에서의 저항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당시 극저온에서의 전기저항에 대한 가설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전자도 모두 얼기 때문에 전기저항이 무한히 커질 것이다. 둘째, 열에너지에 의한 방해가 없으므로 전기저항이 0으로 내려갈 것이다. 셋째, 열에너지의 방해는 없지만 전자도 얼기 때문에 전기저항이 어떤 유한한 값으로 수렴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설들을 검증하기 위해선 절대온도 0K까지 냉각하는 기술이 먼저 필요했다.



1908년, 드디어 헬륨 기체가 네덜란드 물리학자 오네스(Heike Kamerlingh Onnes)에 의해 섭씨 -269도, 절대온도 약 4.2K에서 액화됐다. 오네스는 고압의 헬륨을 액체 공기를 이용해 섭씨 -183도까지 냉각한 후, 액체 수소를 이용해 섭씨 -253도까지 냉각했다. 이후 고압 헬륨 기체를 얇은 관에서 뿜어져 나오게 해 온도를 낮춰 헬륨 액화에 성공한 것이다. 오네스의 헬륨 액화는 냉각기술의 발전을 넘어선 발견으로 이어졌다. 오네스는 극저온에서 전기저항에 대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금속의 저항을 측정했다. 여러 종류의 금속을 실험한 결과, 수은의 전기저항이 절대온도 4.2K에서 0이 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초전도 현상에 대한 최초의 발견이다.

초전도 현상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비록 매우 극저온에서만 초전도 현상이 나타나기에 쉽게 접할 수 없지만, 강한 자기장을 만드는 기술에 사용된다. 가장 친숙한 예로 자기공명영상장치(MRI)에 초전도 현상을 활용되며 핵자기공명장치(NMR), 입자가속기에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를 만들 때도 초전도 현상이 활용되고 있어, 미래 기술 혁명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듯 냉각기술의 발전 과정은 단순해 보이는 기술이 예상치 못한 과학적 발견과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어쩌면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멀리 보면 엄청난 파급력을 갖춘 기술이 더 있지 않을까? 손원혁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양자소재연구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KINS 기밀 유출 있었나… 보안문서 수만 건 다운로드 정황에 수사 의뢰
  2. 수도권 뒤덮은 러브버그…충청권도 확산될까?
  3. [춘하추동]새로운 시작을 향해, 반전하는 생활 습관
  4.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경쟁 입찰 조회수 부풀리기 의혹 제기도
  5. [대전다문화] 열대과일의 나라 태국에서 보내는 여름휴가 ? 두리안을 즐기기 전 알아야 할 주의사항
  1.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2. 3대 특검에 검사 줄줄이 파견 지역 민생사건 '적체'…대전·천안검찰 4명 공백
  3. [대전다문화]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
  4. 한국영상대 학생들, 웹툰·웹소설 마케팅 현장에 뛰어들다
  5. aT, 여름철 배추 수급 안정 위해 총력 대응

헤드라인 뉴스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경쟁 입찰 조회수 부풀리기 의혹 제기도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경쟁 입찰 조회수 부풀리기 의혹 제기도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비상대책위원회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가 상가 정상 운영을 위한 대전시민 10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대전시에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고 나섰다. 비대위는 경쟁 입찰 당시 상인 대부분이 삶의 터전을 잃을까 기존보다 많게는 300% 인상된 가격으로 낙찰을 받았는데, 높은 조회수를 통해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도록 조작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와 대전참여연대는 2일 대전시청 북문에서 '지속 가능한 중앙로 지하상가 운영을 위한 시민참여 공청회 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시에서 입찰을 강행한 결과 여..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반석역 3번출구, 버드내초인근 상권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반석역 3번출구, 버드내초인근 상권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직원 대부분 반대·이직 동요"…해수부 이전 강행 무리수
"직원 대부분 반대·이직 동요"…해수부 이전 강행 무리수

"해수부 전체 직원의 86%, 20대 이하 직원 31명 중 30명이 반대하고, 이전 강행 시 48%가 다른 부처나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최민호 세종시장이 7월 2일부터 예고한 '해수부 이전 철회' 1인 시위에 돌입했다. 이날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5동 해수부 정문 앞에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란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해수부 이전 철회를 촉구하는 입장을 정부부처 공무원을 넘어 시민들과 함께 나누기 위한 발걸음이다. 그가 해수부 이전에 반대하는 입장은 '지역 이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의정활동 체험 ‘재미있어요’

  • 도심 열기 식히는 살수차 도심 열기 식히는 살수차

  •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중앙로지하상가 비대위, 대전시에 공청회 요구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