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암벽에 새겨진 불망비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
실제 김갑순의 불망비에 '죄상(罪狀) 안내판'이 없어 시민들의 마음을 무겁고게 하고 있다. 조선 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까지 지낸 대표적 친일파인데 시가 너무 무관심하다는 지적이다.
13일 확인한 바에 따르면 동학사 입구에 세워진 김갑순 불망비에는 친일 죄상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지 않다.
1906년 부임 직후 위세 과시용으로 만든 김갑순 불망비는 동학사 매표소에서 약 60m 정도 지난 길가(반포면 학봉리 산 18번지) 오른쪽 산기슭의 큰 자연암석에 붙어 있다.
일반 비석과 달리 바위에 글씨를 직접 새겨 넣은 '마애비(磨厓碑)'다. 세로 1.5~1.8m, 가로 40~50cm 크기로 바닥보다 5m 정도 높은 위치에 있다.
비문에는 '행공주군수김공갑순불망비(行公州郡守金公甲淳不忘碑·공주군수 김갑순을 잊지 않음)라고 음각돼 있다. 나무에 가린 탓에 관광·등산객들은 불망비가 왼종일 염탐하듯 내려다 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현장에서 만난 한 등산객은 "친일 행위자 귀신이 은밀하게 숨어 우리를 감시하는 것 같아 소름돋고 불쾌하다"며 "일제가 한반도 곳곳에 박아 놓은 '황국신민서사주' 느낌이 난다. 공주시는 왜 죄상 안내판을 만들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시는 김갑순 불망비와 달리 박제순 순찰사 거사비(이인면), 박중양 충청남도장관 불망비(산성동), 김관현 충청남도지사 흥학선정비(산성동) 옆에는 친일 행적 죄상 안내판을 세워 놨다.
을사오적 안내판 |
2022년 3월 충남도에서도 민족문제연구소에 의뢰해 조사·발표한 '친일 잔재 기초조사 연구' 보고서를 통해 충남 출신 친일 행위자들의 행적을 낱낱이 파헤쳐 공개하면서 김갑순의 불망비에 죄상 안내판이 없는 문제를 지적했다.
1872년 5월 공주에서 출생한 김갑순은 공주·부여 등 4개지역 군수를 역임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시체제 최대 민간 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등을 지내며 많은 재산을 일제에 보탰다.
그의 행위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와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 '친일 인명사전' 등에 정식 수록됐다.
이와 관련, 시 관계자는 김갑순 불망비의 죄상 안내판 설치 필요성에 대해 "전문가 의견 청취와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공주=박종구 기자 pjk0066@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