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공정 보상이라는 4대 개혁 과제로 구성돼 있지만, 필수의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돼 있지 않다. 2018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공공보건의료발전종합대책에서 국민 누구나 받아야 할 보편적인 의료로 필수의료를 개념화하고 응급·외상·심뇌혈관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중증의료, 산모·어린이·장애인 등 건강취약계층 의료서비스, 감염병, 공중보건 위기 대응 등 안전체계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필수의료 분야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전, 충청 지역은 필수의료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이나, 강원도, 전라도 등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의료 접근성 문제가 심각하다. 분만 취약지의 경우, 자택에서 분만실이 있는 의료기관까지 6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없는 지역이 상당수 존재한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취약지에 분만 가능한 의료기관을 개설하고자 하는 기관에 시설투자비와 운영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에는 4118개의 병원 중 공공병원이 222개로 전체의 5.4%에 불과하다. 병상 수로는 공공병원이 9.7%를 차지할 뿐이다. 이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유럽 국가에 비해 공공병원이 적은 일본도 공공병원이 전체 병원의 19%, 병상 수로는 3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의료 불균형은 역사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의료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시기는 1977년 의료보험 전면 도입 이후다. 당시 재정적으로 취약했던 한국은 해외 차관을 도입해 사회개발 투자를 했고, 민간이 병원을 짓도록 차관을 융자해줬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많은 민간병원과 대학병원들이 이러한 차관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의료기관은 크게 성장했지만, 공공의료는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이는 오늘날 한국 의료 시스템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지난해 국립중앙의료원이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일본인 교수가 올해 발표한 논문에서 일본은 공립병원에 대한 지방교부세 조치로 각 도도부현(한국의 시·도)에 의과대학 외에 지역 의료의 핵심이 되는 공립병원이 설치돼 각 지역주민이 고도의 급성기의료를 받기 위해 도쿄, 교토, 오사카 등 대도시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며,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도 공립병원이 위치해 의료를 제공함으로써 주민의 생명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일본 국민들은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매우 소중한 것임을 재인식한 계기가 됐다고 쓰고 있다. 이 글을 읽으며 한국의 현실과 비교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 개선을 위해서는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기능을 지원하면서도 공공의료기관을 다양하고 폭넓게 확충하는 이중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새롭게 건립될 대전의료원이 양질의 공공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시설을 갖추는 것을 넘어, 공공의료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의료진과 직원들을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을 포함한다.
건강권은 아플 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본적 권리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뿐만 아니라 시민의 관심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의료 갈등을 해결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속가능한 의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근찬 우송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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