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는 기본적인 인권과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은 정치적 자유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말하며, 시민권을 보장하는 것은 경쟁적인 선거와 상당한 정도의 '체제 내 반대'의 허용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리나라는 이러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달성되었다고 인정하지만, 아직도 복지 및 소득 재분배 등 사회경제적 갈등과 균열을 제대로 반영하고 대표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민주주의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우리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으나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미흡하다고 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본다면 미국과 일본의 민주화 수준과 비슷합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서는 매년 세계의 '민주화 지수'를 발표하는데, 계속해서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금년은 미국보다는 앞서 있고 일본에 비해서는 떨어졌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22위, 미국은 29위, 일본은 16위로 되어 있는데 해마다 순위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추세로 본다면 세 나라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이와 같은 정치적 민주주의보다는 일상에서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자기가 속한 집단 내에서 동등하게 참여하고 결정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민주주의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낸 바 있는 로버트 달(Robert Dahl) 교수는 민주주의란 "모든 구성원이 해당 단체의 정책 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지니는 제도"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참여란 의제가 설정되고 대안과 주장이 논의되는 숙의 과정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최근 제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자기가 속한 집단' 중에서도 구성원의 질이 가장 높은 대학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데 구성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 사례를 보면서, '여기는 어느 세상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다양성과 비판을 허용해야 하는 대학에서 '대학 통합' 등 중요 정책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민주주의 개념이나 이념에 대해서 설명했지만,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자의적 권한 행사'는 허용되지 않고 '재량권'도 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결정 내용에 대해서는 양면성이 있으니까 시시비비를 유보하나, 결과보다도 절차나 과정의 비민주성을 지적합니다. 대학 존폐에 관한 문제인데 막판에 한두 사람이나 보직교수들이 확정하고 사후 설명, 그것도 편향적 자료에 근거해서 설득하는 것은 대학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일부 대학의 사례이겠지만, 이렇게 대학에서는 재량권의 범위를 넘어 권한의 자의적 행사를 제어할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할 대학이 가장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염홍철 국립한밭대 명예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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