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환자가 가져온 올망졸망 꾸러미가 날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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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환자가 가져온 올망졸망 꾸러미가 날 울립니다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4-08-0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응급실 환자로 병원에 실려가 5월 넷째 주 토요일 퇴원을 했다. 8일 동안에 2번씩이나 응급실 환자로 입원했다가 회생을 했다. 폭풍우에도 꺾이지 않은 나뭇가지가 된 셈이었다.

요로결석 통증으로 엄청 고생도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맥질하는 시간이었다. 간호사를 비롯한 친구, 지인들의 느꺼운 사랑을 많이도 받은 뭉클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말마 같은 진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게 오히려 전립선암을 발견하게 됐으니 이는 어찌 보면 운 좋은 횡재가 또 아니겠는가!

암은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고 무서워하는 병임에 틀림없다. 그런 암을 응급실 가서 조기 발견하여 서둘러 치료하고 건강에 신경 쓸 수 있게 해 주셨으니 실로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겐 축복이요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웬만한 통증이었다면 응급실 신세를 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응급 환자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암을 더 키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랬다가 키운 암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통증으로 뒤트는 위급 환자가 된 것이, 운 좋게도 암을 발견하게 됐으니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은총을 받아도 너무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러기에 나에게 내린 전립선암 선고에 느꺼운 감사를 드린다. 아주 많이 고마워하는 심정임에 틀림없다. 서둘러 암을 고치라는 빌미로 암시를 주셨기 때문이다.

퇴원하던 날 김순자 부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후 4시까지 우리 집을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부장님은 내가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친구 중 한 분이시다. 김부장님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받고 존경받는 분이시다. 가슴이 따뜻하고 베풀기를 좋아하기에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도 보듬어 사랑하신다. 변함없는 따뜻함과 선한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무르녹이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만인의 연인이라 할 만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여장부이시다. 내 보기에는 하늘이 내리신 보석 같으신 여인이라 하겠다.

오후 4시가 다 된 시각에 김순자 부장님의 승용차가 도착했다. 지난 1월 위암수술로 회복이 채 되지도 않은 환자가 힘에 버거운 박스를 끌다시피 우리 집 문안에다 옮겨 놓았다.

박스를 푸는 순간 똬리를 틀고 있는 정성과 사랑이 숨 쉬고 있는 올망졸망 꾸러미와 봉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비싼 소불고기 잰 것, 방울토마토, 싸리버섯, 곤드레 나물밥, 양념고추장, 알뜰하게도 챙겨온 행주, 식욕을 돋구는 싱싱하고 너부죽한 상추, 송알송알 굵직하면서도 먹음직스런 거봉 포도송이가 눈시울을 붉히게 하고 있었다.

순간 예정에도 없었던 액체가 뺨을 적시고 있었다. 그 액체는 인색하지 않을 정도 묻어나는 감동으로 날 울리고 있었다. 올망졸망 봉다리와 꾸러미에 어려 있는 정성과 사랑이 날 울린 것도 있었지만 그것만이 날 울린 요체는 될 수 없었다.

그보다는 바짝 마른 위암 수술 환자로 당신의 몸 추스르기도 어려웠을 텐데 날 생각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었다. 그 무거운 박스를 힘겹게 날라 온 것도 모두가 나에 대한 우정, 보시 같은 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순간 보기에도 안타까운 앙상한 다리, 핼쑥하고 창백한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보기에도 애처로운 위암 환자의 지극정성에 감동의 눈시울을 붉히며 푸념 같은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세상이 삭막하여 살기가 어렵다지만 김순자 부장님과 같이 따뜻한 가슴과 사랑이 도처에 숨 쉬고 있기에 세상은 살 만한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아니, 그 덕분에 음지가 양지가 되면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꽃은 향기가 있어 사람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풍기는 인품의 향기는 그 무엇에 비길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으로 천 리를 만 리를 가고서도 남는다.

선인들께서 난향백리, 묵향천리, 덕향만리(蘭香百里, 墨香千里 德香萬里: 난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묵의 향기는 천 리를 가지만, 덕의 향기는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라 하시며 인간의 덕을 강조하신 것을, 김부장님은 몸소 실행으로 그 본보기가 되셨다. 덕향만리(德香萬里)가 무엇인가를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란 말로 보여주셨으니 참으로 장하시다.

덕향만리(德香萬里)를 몸으로 보여주시는 김순자 부장이시여!

당신께서 파놓으신 오아시스 샘이 덕향과 인향이 콸콸 솟는 용천수로 흐르게 하여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사해동포(四海同胞)로 살게 하소서.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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