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근은 1972년 대전으로 귀향해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업은 동양의 정서와 조형문화를 가장 잘 담아내는 질료인 칠을 통해 한국적 조형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당시 도록을 살펴보면 "최영근의 작품 앞에서면 '현묘(玄妙)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현묘는 이치나 기예의 경지가 헤아릴 수 없이 그윽하고 미묘함을 뜻한다. (중략) 그 바탕을 이루는 검은색은 단순한 검은 빛깔이 아니다. '흑(黑)'이나 '암(暗)'과는 다른, 작가가 의도하는 검은 빛, 즉 '현(玄)'이며 창조적 생서의 모태가 되는 빛으로 해석한다"고 서술한다.
이렇듯 최영근은 칠 예술의 본질적 매력이 그 바탕의 검은 빛깔에 있음을 인식하고, 칠 화면 위에 자래와 난각, 금은 가루, 색편 등으로 주제적 의미를 더한다. 그는 빛, 에너지, 바람, 별, 탄생 등을 주제 삼아 시간의 축적과 고뇌의 흔적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곧 천지창조의 장엄한 세계와 그 원형적 질서를 찾는 그의 작업관을 반영한다. 전시는 1990년 그의 제1회 개인전에 출품했던 <역사의 고향> 연작을 포함해 최영근의 작업적 철학과 그가 추구하는 조형의 단상을 엿볼 수 있는 작품 100점을 선보였다. <현묘지예>는 작가 최영근을, 동시에 기교나 순간의 즉흥에 의지하지 않고 시간의 정직한 흔적을 작가 정신으로 삼은 대전미술의 면(面)을 엿볼 수 있는 전시로 남았다.
/우리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