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아파트 인근에 교회가 있으니, '목회 중인가?'라고 어림짐작했다. 그런데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곰곰히 생각하니 시간대가 어중간했다. 새벽기도 시간대도, 야간기도 시간대도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주말에는 찬송가는 고사하고 목사님의 한마디 설교조차 들리지 않으니 실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참을 수 없는 호기심과 간절함이 발동하여 주위에 꼬치꼬치 캐묻고 다니기에 이르렀다. '~카더라' 통신을 종합해 보니, 요양보호사 한 분이 거동이 불편한 동네 어르신과 함께 아파트 단지 한쪽에서 소일삼아 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러든 어느 날 외출하던 길에 아침마다 찬송가를 부르던 두 분과 맞닥뜨렸다. 반색하며 두 분께 여쭈었다.
"저, 찬송가 부르시던 분들 맞지요?"
"예, 맞는데요. 왜 그러세요?"
"다름 아니라 부르신 찬송가 중에 제목을 알고 싶은 곡이 있어서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찬송가 제목을 알려 달라고 길을 막아섰으니 얼마나 황당무계했을까? 그것도 일본어로 찬송가 일부를 불러제끼며 강제하듯 졸라댔으니 알던 것도 잊어 버릴 판이었으리라.
올해 6월 말,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K팝(K-POP) 그룹의 팬미팅 이벤트에서 한 멤버가 부른 '푸른 산호초 (靑い珊瑚礁)'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이 있다.
일본 대중가수 마츠다세이코(松田聖子)가 1980년에 부른 히트곡을 40여 년 만에 한국의 2004년생 아이돌 가수가 커버한 것인데, 첫 소절을 부르자마자 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고 얌전하기로 정평이 난 일본 관중들이 떼창을 부르며 환호했다.
한•일 양국 매스컴에서도 이 사건을 연일 비중 있게 다루었고, 관련 동영상 스트리밍 조회수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K팝 가수가 부른 화제의 J팝(J-POP)을 두고 경제 논리로 접근하는 신문 기사도 넘쳐났다. 1980년대 일본 경제는 그야말로 초호황기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따라 일본 엔화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수출 경쟁에서 불리해지고 투기성 자본이 일본으로 몰리기 전까지의 얘기다.
신문 기사는 일본 경제의 부침을 다루며 위상이 높아진 한국 아이돌이 1980년대를 상징하는 J팝을 부르면서 황금기의 일본을 소환했다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신문기사를 읽고 나서 버스로 왕복 3시간 거리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며 일본어에 매진하던 1990년대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기독교 재단에서 설립한 어학원의 강좌를 수강하던 때다. 선생님들은 기도로 수업을 시작했고, 수업하는 중에 영어나 일본어로 전달되는 목회 내용이나 찬송가가 귓전을 때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럼에도 불구, 체계화된 커리큘럼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몇 년을 수학하니 어느덧 원하는 어학 실력이 쌓여 있었다.
30년도 더 지나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제목도 모르는 찬송가를 일본어로 따라 부르며, 힘들었지만 가장 빛났던 나의 리즈 시절을 몇 번이고 리플레이한다.
K팝 가수가 부른 노스탤지어(nostalgia)의 J팝에 심취한 일본 관중들처럼.
박진희 명예기자(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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