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청미 짚불 구이.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이 서산에 별미가 한둘이 아니겠지만 무태장어를 짚불에 구워 준다 하여 떠났다.
서산시 고운로 245에 위치한 청미짚불장어집 뒤 칸에는 짚이 잔뜩 쌓여 있고, 연기에 그을려 시커멓게 탄 석쇠에 화덕에 올려 져 있었다.
이곳에서 무태장어를 두벌 구이 하여 손님 앞에서 다시 숯불로 구워 먹게 한다고 한다.
필자는 20여 년 전 기장에서 꼼장어 짚불구이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청미짚불장어집에서 감자장어탕이라는 메뉴를 보고 뭔가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어 시켰다.
'맛있는 여행'글을 쓰면 느끼는 건 이미 소문이 나고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맛집의 음식을 소개할 때가 제일 곤혹스럽다.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것은 수십 년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글을 쓰는 필자의 자존심의 문제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처럼 정말 맛있는 숨겨진 맛집을 찾으면 마치 광야에서 보물을 찾은 기분이다.
아직 소문이 덜 나서 그렇지 어쩌면 청미짚불장어집은 주메뉴인 짚불무태장어 보다. 머지않아 감자장어탕이 별미를 즐기는 마니아 층들로부터 더 사랑을 받고 더 유명해 질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서산의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해도 좋을 듯싶다.
특히 서산은 감자가 유명한 곳이다.
감자하면 강원도가 떠오르지만, 충남 서산의 금강산이라 할 수 있는 팔봉산에서 재배되는 감자가 맛이 있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짚불화덕. (사진= 김영복 연구가) |
팔봉산 감자는 서산의 기후 특징인 서늘한 해양성 기후와 함께 감자가 자라기에 가장 적합한 토양인 사질 양토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저장 양분의 축적이 많고 맛이 좋다고 한다. 맛과 품질이 우수하고 단단하여 포슬포슬한 맛이 전국 감자 중에서 최고로 손꼽힌다.
감자의 주성분은 전분이지만 무기질, 비타민C, 비타민B1, 비타민B2, 니아신 등도 풍부해 매우 높은 영양적 가치를 가진 작물이다.
감자의 비타민 C는 전분에 함유되어 보호받고 있어, 가열해도 잘 파괴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감자장어탕의 주 재료인 뱀장어는 일반 생선에 비해 150배 정도의 비타민A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눈 건강에 좋다. 우리 몸에 비타민A가 부족하면 야맹증(夜盲症), 시력 장애, 치아 발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피부나 점막의 저항력도 약해지기 때문에 감기에 잘 걸린다. 장어의 미끈미끈한 부분에 있는 뮤코 단백질(muco protein)은 위장 점막을 보호해주고 소화를 돕는다. 장어에 함유되어 있는 비타민B2와 타우린(taurine) 성분이 피로해소를 도와주며, 비타민B2와 레티놀(retinol)은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장어의 지방을 구성하는 불포화지방산(不飽和脂肪酸)은 모세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며 몸의 생기를 왕성하게 해주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장어도 먹이에 따라 지방산의 조성이 다르게 되는데 양식(養殖)한 것보다 자연산이 훨씬 우수하다. 산성식품인 장어는 등의 빛깔이 회흑색, 다갈색, 진한 녹색인 것이 맛이 좋으며, 살이 미끈하고 눈이 투명한 것이 신선하다.
감자장어탕은 지역의 특산물인 감자와 영양가 풍부한 장어를 이용한 훌륭한 음식으로 서산의 향토음식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태 장어 짚불 구이.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짚불구이의 유래는 우리의 오래 된 전통문화인 정월 대보름 볏짚 태우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60~70년대 땔감 중에는 짚, 콩대, 수수대 등 아궁이에 넣고 땔 수 있는 것은 모두 저장해 놓았다가 사용했다.
특히 벼농사를 주축으로 이루어졌던 농업은 광복 후의 혼란 속에서 농약 · 비료 등의 영농자재 생산이 막혀 미곡 증산이 지지부진 했지만 어쨌든 우리의 농업은 벼농사 중심이었다.
우리 국민의 주식인 밥을 얻기 위해 벼농사를 짓지만 당시 벼에서 나오는 짚은 땔감 외에도 주거 생활을 위한 지붕의 이엉, 소 등 짐승의 먹이, 공예품으로 당시 없어는 안 되는 요긴한 생산품이었다. 심지어 짚에서 나오는 지푸라기나, 검불까지도 버릴게 하나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농촌 들판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볏짚 태우기를 한다.
이 볏짚 태우기는 이전 해에 남은 볏짚을 모아 불태우는 것을 의미하는데, 볏짚을 태우면 그 재[灰]가 되어 그 재가 땅에 퍼져 비료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 들판에서 심어진 벼가 봄에 풍부한 수확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들판의 볏짚을 태우므로 병충해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하기도 하며, 물론 이러한 현실적인 이점과 함게 볏짚 태우기를 하는 것은 볏짚을 태울 때 일어나는 밝은 불빛과 연기가 악귀를 쫓아 낸다는 의미와 복이 가득하고 해악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주술적 의미도 있다.
이 볏짚 태우기는 벼농사를 짓는 국가인 이집트나 베트남 등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집트에서는 추수한 후 볏짚을 태워 온 도시가 연기가 자욱하고 불향 가득한 매캐한 냄새가 날 정도라고 한다.
농촌의 이러한 볏짚 태우기나 콩서리 등과 함께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 난 것이 바로 짚불 구이다.
이 짚불구이는 내륙에서는 돼지고기나 고구마, 감자, 밀떡, 해안지방에서는 생선과 해물 등이다.
감자장어탕.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짚불구이하면 부산 기장군의 꼼장어짚불구이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기장 꼼장어짚불구이는 두 가지 유래가 공존하고 있다. 한 가지는 농번기를 끝내고 짚불 태우기를 하면서 기장 앞바다에서 잡아 온 꼼장어를 툭 던져 놓았다가 검게 익은 꼼장어를 끄집어 내 겉에 탄 검은 부분을 벗겨 내고 먹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기장군 일대에서 꼼장어를 잡으면 꼼장어의 껍질을 벗겨 나막신 끈, 모자 테두리 등을 만드는 데 썼다.
그리고 쓸모없는 고기는 내다 버렸고 보릿고개조차 넘기기 힘들었던 배고픈 한국인들은 이를 가져다 구워 먹었던 게 기장 꼼장어 구이의 시초다. 라는 설이 있다.
어쩌면 농한기에 짚불 태우기로부터 시작 된 것이 더 오래된 유래가 되었겠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시대 버려진 꼼장어 속살을 짚불에 구워 먹었다는 설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공업용으로 수매되어 껍질을 벗긴 후 나온 부산물이 기장 농촌지역에 어느 정도 흘러들어 와 짚불 꼼장어용으로 상용화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짚불구이는 기장만 국한된 음식은 아니다.
조선일보 1974년 3월9일 자를 보면 '청어 다산지(多産地)인 경상북도에서는 말린(소건(素乾))청어를「과미)라고 이름지어지방 특산품으로 진중시(珍重視))하고있다.이「과미기」를 짚불에다 구워가지고 어피(魚皮))를 벗기어버리면 속에 아주 새빨간 어육(어육(魚肉))이 나오는데 그것이 별미다.'라고 나온다.
이렇듯 짚불구이는 옛날에는 내륙이나 해안지방에서 즐겨 해 먹던 요리법으로 언제 부터인지는 몰라도 일본에도 짚불구이를 해 먹고 있다.
일본에도 후쿠오까 텐진에 가면 불 쑈를 하듯 참치짚불구이를 하는 곳이 있다. 붉은 색의 참치를 아까미(あかみ)라고 하고, 짚을 고(藁) 즉 '와라'라고 한다. 그리고 야끼(き)는 구이를 뜻하는데, 스모키한 짚불향이 은은하게 나는 참치 아까미 와라야끼(あかみ 藁き)가 유명하다. 이렇게 와라야끼(藁き) 짚(와라)을 사용하여 음식을 구워내는 조리법이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10년(1479) 6월 10일 자를 보면 '표류(漂流)했던 제주(濟州) 사람 김비의(金非衣)·강무(姜茂)·이정(李正) 등 세 사람이 유구국(琉球國)으로부터 돌아왔는데, 지나온바 여러 섬의 풍속(風俗)을 말하는 것이 매우 기이(奇異)하므로, 임금이 홍문관(弘文館)에 명하여 그 말을 써서 아뢰라고 하였다. 그 말에 이르기를, 흙을 뭉쳐서 솥을 만들어 햇빛에 쪼여 말려서 짚불로써 태워 밥을 짓는데, 5, 6일이면 문득 파열(破裂)해 버립니다.'라고 나온다. 이 당시 일본에서도 짚불을 요긴하게 사용했던 것이다. 어쨌든 서산의 청미짚불장어는 무태장어(無泰長魚)를 짚불에 구워 먹는 요리로 불향과 함께 고소하고 쫀득한 장어의 맛을 즐길 수가 있다.
제주 서귀포에서는 깨붕장어, 깨붕어라고 부른다. 영어명은 '큰 얼룩 뱀장어'giant mottled eel이며, 일본명도 '큰 뱀장어'おおうなざ大鰻라고 한다.
감자 장어탕. (사진= 김영복 연구가) |
무태장어의 생태도 뱀장어와 비슷해서 하천에서 5~8년 정도 살다가 성어가 되면 깊은 바다로 들어가 산란한다.
무태장어는 맛이 좋아 중국에서'花鰻(화만) 즉 꽃뱀장어'라 불린다 하고, 살이 깊어 쫄깃한 것이 고소하고 담백하다고 한다.
장어나 무태장어는 바다에서 자라 강에 올라와 산란하는 연어와 반대로 깨끗한 민물에서 살다가 먼 바다로 나가 알을 낳기에 자연에서 번식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바다에서 새끼(치어)를 잡아다가 고작해서 인공사육을 한다.
무태장어는 양식이 까다로워 시장에 퍽 많은 물량을 내놓을 만큼 대량생산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성냥개비보다 작은 무태장어 치어가 필리핀에서 많이 잡히는 까닭에 값이 많이 싸졌고, 또한 여러 어부의 값진 노력으로 치어의 생존력이 높아지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어민들은 이렇게 수많은 난관을 무릅쓰고 애쓴 보람이 있어서 드디어 양식을 시작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 꽤 많은 양을 시판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게다가 전국적으로 양식장도 점차 늘어나고 있기에 무태장어 시장은 더 넓어지고 많이 커질 전망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