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폭우로 인해 '소대헌·호연재 고택' 화단에 주목 나무가 전도된 모습. |
▲ 침수에 붕괴까지…폭우에 속수무책
7월 7일부터 10일까지 누적강우량 평균 280㎜의 폭우가 쏟아졌던 충남에서는 27개의 문화유산이 비 피해를 입었다. 지역별로는 부여가 10개로 가장 많았고, 논산 6개, 서천 5개, 공주 2개, 보령, 서산, 태안, 금산 지역에서 각 1개다.
태안에서는 '안흥진성' 성벽 3.5m가량이 붕괴됐다. 논산에서는 '남양전씨 종중문서 부속건물' 지붕 일부가 붕괴됐고, '금곡서원' 지붕 기와가 떨어지기도 했다. 부여에서는 '대조사' 내 보물 '석조미륵보살입상'의 아래쪽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대조사 수각과 명부전 일부가 파손됐다. '능안골 고분군' 탐방로와 '나성' 탐방로 일대에서도 토사가 유출됐다.
공주에서는 '공산성' 내 영은사 만하루(연지 구간) 탐방로 일부가 유실되기도 했다. 앞서 공산성은 2013년과 2020년, 2022년, 2023년 4차례 집중호우로 성벽 일부가 무너지는 피해를 겪었다. 지난해 금서루 인근 성벽 5m가량이 붕괴돼 올해도 보수가 이뤄지고 있지만, 7월 내내 장맛비가 내리면서 복구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주시 관계자는 "비 때문에 이번 달에 공사를 아예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 다음 달까지 복구작업이 진행될 거 같다"며 "공산성은 성벽 자체가 경사면에 만들어져 비가 올 때 더 취약한 편인데 경사가 가파른 위험 구간에 조치를 해둬 올해는 그나마 피해가 심하지 않았다. 강수량이 워낙 많아져서 작년부터 피해가 심해져 지속적으로 대비해야 할 거 같다"고 했다.
대전도 지난 집중호우 기간 10건의 문화유산 피해가 있었다. '소대헌·호연재 고택' 화단에 심어진 주목 나무가 쓰러졌으며, '옛 대전형무소' 우물 주변에 물고임 현상이 발생해 곧바로 배수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충북에서는 '청주 송상현 묘소 및 신도비' 주변 진입부 계단 사면 일부 유실 등 2건의 문화유산 피해가 있었다.
호우로 산사태 발생한 '부여 대조사' 긴급점검 나선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사진 출처=국가유산청) |
국가유산청 집계 결과, 2008년부터 2024년까지 국가 지정·등록 문화유산 재난 피해 건수는 1075건에 이른다. 이중 풍수해 피해가 953건으로 가장 많았고, 지진이 67건, 산불 등 화재는 55건으로 확인됐다. 시·도 지정, 등록 문화유산까지 합치면 피해 건수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대전과 충남의 경우, 풍수해 중에서도 호우로 인한 피해 비중이 많았다. 2022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발표한 조사연구서 '우리나라 문화·자연유산의 기후변화 대응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최근 20년간 지역별로 풍수해 원인별 피해 건수를 검토한 결과, 호우피해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대전(100%)이었고, 광주(83%), 충남(80%), 대구(75%), 경기도(66%), 전북(66%), 서울(59%) 등의 순이었다. 이들 지역은 전북을 제외하면 주로 중부 내륙지방에 위치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 비중이 높은 곳은 해안과 인접한 제주(90%), 울산(75%), 부산(68%), 경북(65%), 전남(63%), 경남(59%) 등의 순이었다. 문화유산의 강풍 피해 건수는 총 10건으로 서울에서 3건, 강원도, 경북, 전북 지역에서 각 2건, 광주에서 1건이 발생했다.
기후변화로 여름철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호우 빈도수가 많아져 문화유산이 훼손되는 일이 증가했다. 대전에서는 지난 겨울 잦은 비로 도산서원 담장, 동춘당 아궁이 등이 일부 훼손되기도 했다. 담장과 아궁이가 내습성이 낮은 회벽으로 이뤄져 있다 보니 비가 오면 많은 양의 습기를 빨아들이고, 밤이 돼서 영하로 떨어지면 수분팽창으로 회벽에 훼손이 생겨 담장이 붕괴되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문화유산의 피해는 직접적인 물리적 파손 외에 간접적인 양상으로도 진행 중이다. 연구원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식생이 변경돼 문화재 보수용 재료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재료가 변경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이미 주요 건축 유산의 수리 시 목부재로 북미에서 들여온 더글라스퍼가 다수 사용되고 있다. 또 초가집 지붕에 얹히는 볏짚은 전통적으로 재배하던 키가 큰 토종 품종이 아니라, 키가 작고 열매가 많이 맺히는 동남아시아 품종을 토대로 1970년대에 개량된 통일벼 등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은 품종의 볏짚으로 대체돼 있다는 것이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연구보고서를 통해 "피해 사례 대부분이 고온다습을 특징으로 하는 아열대와 연결되며 피해 사례와 정도가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심각해지고 있어 기후변화에 맞닥뜨렸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공주 공산성 성벽 일부가 무너져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방수포를 덮은 모습. (사진=중도일보 DB) |
기후변화에 따른 문화유산 피해가 늘면서 보수비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전국 지자체가 국가유산청에 국가 문화유산 긴급보수를 위해 신청한 금액은 2021년 19억 원, 2022년 55억 원, 2023년 73억 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그나마 국가 유산 보수비는 국비가 50% 지원되지만, 시·도 문화유산은 지방비로 감당해야 한다. 대전의 경우 국가 문화유산은 38개, 시 문화유산은 196개다. 충남은 국가 문화유산 77개, 도 문화유산은 723개(무형 제외)다. 자연재해로 인한 문화유산 피해가 늘다 보니 충남은 최근 시군 지원을 위해 도 차원에서 긴급보수비 1억 원을 추가로 세웠다.
문화재 관리 현장의 고충도 상당하다. 충청권 모 지자체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매년 문화재 정비 예산이 증액되지 않는 상황이고, 만들어진 지 몇백 년 된 한옥, 축조된 지 1000년이 넘는 산성들은 재해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관리 부실로만 보는 시선 때문에 힘든 점이 있다"며 "문화유산 보수는 전문가의 설계와 자문, 국가유산청에 현상변경허가 신청 등 절차가 복잡한데, 빠른 복구가 안 된다는 질타 때문에 어려운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결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늘어나는 자연재해로부터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비중 있는 예산 투입도 수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류용환 목원대 역사학과 교수는 "문화재 이상 유무를 적기에 파악할 수 있도록 현재 시행 중인 문화재 돌봄 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며 "지역마다 돌봄 단체를 선정해 수시로 문화재 현황을 점검하고, 여름철에는 단체 내 기술자가 직접 수리를 하기도 한다. 우려되는 점은 최근 국가 재정 악화로 문화 지원 예산이 줄어서 돌봄 단체 인력이 줄은 지역도 있는데, 문화재 모니터링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안여종 문화유산 '울림' 대표는 "오히려 한옥보다는 근대문화유산이 상대적으로 통풍이나 환기가 안돼 누수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며 "산성의 '배부름 현상'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하고, 집중호우 예보 시 문화유산 주변 하수구 관리나 문화재 돌봄 단체에서 상시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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